일본 우익의 한국인 혐오는 지독하고 유난스럽다. 그들에게 한국과 북한은 같은 ‘적국’일 뿐이고, 재일교포 역시 일본에서 쫓아내야 할 존재들이다.
‘헤이트 스피치’는 ‘인종·국적·종교·성별이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선동하는 발언’이지만, 일본에선 ‘조센징’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상징하는 말로 통용된다.
그들은 도쿄 한복판 신주쿠역 주변에서 거의 매주 혐한시위를 벌인다. 나서는 사람들은 확성기를 들고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개인도 있지만, ‘재특회’와 같은 극우단체도 있다.
재특회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의 줄임말로 “일본에 거주하는 조센징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특권은 ‘세금면제, 수도·전기요금 면제, 생활보호혜택’ 등이다. 물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세상 어디에도 이민족에게 자국민보다 더한 은혜를 베푸는 나라는 없다. 게다가 재일교포들은 참정권 등 기본적인 ‘평등’조차 누리지 못하는 시민권 밖의 존재다. 하지만 우익들은 “흉악범죄는 대부분 조센징이 저지른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진짜 심각한 건 이런 선동이 일정부분 먹혀든다는 사실이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제암흑기가 장기화되면서 이방인에 대한 적대적 혐오는 빈곤층의 불만과 관심을 돌리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1923년 일어난 간토(관동)대지진 때도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선동해 학살극을 벌였으니, 위기마다 한민족을 이용해 민심을 돌리는 마녀사냥 식의 악랄한 관습은 적어도 100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지난 9월, 일본에서 사달이 났다.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문화예술센터에서 열린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2019’ 기획전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 중단 결정을 받고 가벽으로 가려졌다. 1일부터 시작된 소녀상 전시에 대해 우익세력의 테러협박이 거세지자 주최 측이 3일 만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더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일본의 예술가와 양심적인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당국의 비겁함을 비판하고 항의했다. 여기에 아베 정부의 보조금 취소결정까지 나오자, 두 달여 동안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소녀상을 가둔 가벽엔 시민들이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형형색색의 쪽지 수만 장이 나붙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주최 측은 결국 전시재개를 결정했고, 이는 더 많은 관객을 흡인하는 요인이 됐다. 우익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전범국 일본과 아베정부의 옹졸함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꼴이 된 것이다.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란 이름의 전시회는 (이 소동 덕분에) 일본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또 한편으론 일본의 건강한 시민들은 우익의 혐한선동과 악선전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긍정과 희망을 발견한 계기도 됐다.
요즘 일부 위탁관리업체들이 소속 관리사무소장들에게 주택관리사법 제정 반대 서명을 종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국가자격사가 자신의 법을 거부하는 건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적 행위다. 단 한 사람이라도 “본사의 강압 때문에 서명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순간, 그 서명서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만다. 당사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위탁관리업체 입장에서 이익이 침해당한다고 판단되면 당당하게 반대할 수 있다. 법안의 수정이나 철회를 요구하는 건 ‘의사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소속 소장들까지 동원해서 세를 부풀리는 건 누가 봐도 치졸한 부당행위다. 이런 게 바로 ‘표현의 부자유’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봤자, 가려지는 건 자신의 두 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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