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정순  수필가

점심 식사 후 몹시 보고 싶은 사람이 불러낸 듯 공원으로 튀어 나간다. 최근 들어 이런 기동성을 본 적이 없다. 공원의 흙길로 들어섰다. 맨발바닥이 젖은 흙길에 닿은 순간, 나는 희열을 느꼈다. 무슨 영문일까. 고작 다섯 번째 맨발로 걸었는데 그 사이에 나는 흙길 사랑에 푹 빠진 것일까. 발바닥이 땅에 닿은 순간 하나인 듯 밀착되는 그 촉감에 놀라고, 에너지가 내 몸 안으로 빨려 올라온다는 느낌 때문에 놀라고, 잠이 드는 데 어려움이 없고 깊이 자고 일어나서 놀랐으니, 오늘은 무엇에 놀랄지 궁금하다.   
“자 지금부터 폭신폭신한 찐빵을 만지듯, 불은 엄마의 젖을 만지듯 나는 발바닥으로 대지를 만지며 걷는 거야.”
태풍 링링으로 떨어진 아카시아 이파리로 흙길이 표범무늬를 닮았다. 지저분해 보여서 대비로 쓸었다. 빗자루 지나간 자리마다 신선한 흔적이 남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악사악 흙이 쓸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배드민턴장의 한 코너를 다 쓸고 뒤돌아보니 그 길이 내 마음인 듯 맑고 개운하다. 잡스런 생각이 사라진 마음이 이렇겠거니 생각한다. 걷기 위해 와서 내면을 발견한다. 
최근 나는 호피무늬의  긴 가디건을 입었다. 지하도에서 그 옷을 만나기가 무섭게 대번에 골라 들었다. 옷이 나인 듯 몸과 하나가 돼줬다. 나는 한동안 그 옷을 즐겨 입었다. 그런데 대비로 공원의 흙길을 쓸어 말쑥하게 하고 난 후로 그 옷에 손이 가지 않는다. 스쳐가는 생각, 아 비질을 하는 행위가 내 마음을 청소하는 거였구나. 심리치료 매체로 사용됐구나. 마음이 옷으로 드러나고 행위가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이 오묘함을 신비스럽게 맛본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  떨어진 아카시아 이파리가 빗물에 젖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닌 것을 보니 호피무늬를 닮았다. 나는 가려진 흙길이 드러나도록 말끔하게 쓸어냈더니 속이 시원해졌다. 내가 쓸고 내가 그 길을 걸으며 철학을 하고 운동 겸 즐긴다.  
최근 문자의 오해로 동생과 마음이 구정거렸는데 내 마음의 이미지가 구정물이 튄 듯 점박이와 닮았던가 보다. 하나의 동사, ‘비 질 하다’가 내외면에 동시에 작용했나 보다. 그렇다면 나는 흙길만 걷는 게 아니라 기억의 길을 걷고 내면세계를 산책하고 사물을 육안으로도 읽고 심안으로도 읽는 거였다. 그러니 흙길을 걸으면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것이니 일거양득의 건강 생활법이다.  
흙길이 젖으니 어제의 매력 있던 몽근 흙 자리보다 매끈하고 단단하게 다져졌던 길이 되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단단함에 촉촉함이 곁들여지니 저항한다는 느낌보다 밀착된다는 느낌이 크다. 파이지도 않고 눌리지도 않으니 매력 만점이다. 다음 날 멀리 영광까지 가야 하기에 걸어야 한다.   
하루 여행길을 떠나면서 호피무늬와 꽃무늬 점퍼를 꺼냈다가 되 걸어두고 단색 카디건을 선택했다. 아무리 좋거나 예뻐도 옷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는다. 마음에 든다는 것은 색이나 형태, 바느질 등이 자신의 마음을 닮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옷은 그 사람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래서 패션의 세계는 이 지구상에서 저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옷 선택을 통해서 나의 내면을 확실히 읽는다.  
개운해진 마음으로 영광의 불갑사 꽃무릇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선운사에 들렀다. 아침 7시에 나가서 차를 오래 타고 만보 정도 걸었더니 상당히 고단하다. 남편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절의 경내로 들어가지 않고 초입의 장의자에서 쉬기로 했다. 막 앉으려고 하는데 내 눈 앞에 펼쳐진 길이 비에 씻긴 흙길이다. 나는 얼른 맨발로 흙길에 들어섰다. 발바닥이 땅에 닿은 순간 내려앉아있던 눈꺼풀이 올라가면서 흙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 만보를 걸은 다음인데도 피곤하지 않다. 도솔천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씻으니 피로는 사라지고 발바닥이 천국이다. 흙은 오늘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는 9시쯤 돌아와 땅의 힘으로 충전된 몸으로 원고를 완성해 송고를 마쳤다.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풍요롭게, 봉사와 기도생활로 영혼을 맑게, 맨살로 땅의 힘을 받아 몸을 살려내며 균형을 잡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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