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서울시 보라매안전체험관
김영도 소방안전교육사

계절이 가을로 옮겨왔음에도 매미 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고 들리는 듯하다. 
매미는 우리가 아는 성충이 되기까지 7년이라는 긴 세월을 준비하지만, 그 모습으로는 7~20일밖에 살지 못한다. 목청껏 우는 수컷과의 사이에서 암매미가 낳은 알은 나무 줄기 속에서 다음 해 초여름에 이르러서야 애벌레가 된다. 땅 속으로 들어간 애벌레는 굼벵이로 지내며 네 차례의 허물벗기를 거듭한 후 세상 밖으로 나온다. 땅 위에서 혹은 나무에 매달려 우화(羽化; 날개돋이)의 고통을 이겨 마침내 매미의 모습으로 살다가 짝짓기 후 짧은 삶을 마감한다. 7일을 살기 위해 7년을 준비하는 매미의 삶은 10초를 방사하기 위해 10년의 내용연수를 가진 분말소화기의 그것과 비슷하다. 
아파트의 각 가구에는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화기를 배치하는데, 불을 다루는 주방이나 접근하기 좋은 거실·현관 등에 약제중량 3.3㎏의 분말 소화기를 주로 둔다. 가장 대중화된 이 분말 소화기의 제원표에는 ‘제조 연월일’과 ‘방사 시간’이 표기돼 있다. 제조 연월일을 통해 10년의 내용연수에 이르렀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소화약제를 사방으로 방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방사 시간은 10~15초밖에 되지 않음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소화기는 긴 내용연수를 갖기 때문에 평소에 잘 유지·관리해야 하고, 짧은 시간에 방사가 끝나므로 사용법도 잘 알고 실천해야 한다. 
먼저 유지·관리 측면이다. 분말 소화기는 주로 소화약제인 제1인산암모늄(NH4H2PO4)을 미세한 분말로 만들어 유동성을 높인 후 이를 질소(N2) 가스압으로 분출시켜 소화하는 원리다. 분말 소화약제는 습기와 반응해 굳는 것을 막기 위해 실리콘 수지 등으로 방습 가공하며, 자체 압력이 있어 습기의 유입이 어렵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흔들어 줄 필요는 없다. 다만 매월 1회 이상 질소 가스압 지시압력계의 바늘이 정상 위치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때 정상위치는 녹색범위(7~9.8㎏/㎠)인 12시 방향을 말하며, 보통 제품 출고 시에는 지시압력계의 바늘이 과충전인 1시 방향을 가리키지만 사용은 가능하다. 
단 지시압력계의 바늘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9~11시를 가리킨다면 이는 압력 미달이기 때문에 반드시 새 소화기로 바꿔야 한다. 한편 가스압이 정상이더라도 10년의 내용연수가 지나버린 소화기는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이 외에도 직사광선, 고온 및 다습의 장소를 피해 설치해야 부식이나 파손을 방지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사용 측면이다. 소화기 사용방법은 ①안전핀을 뽑은 후 ②호스를 불쪽으로 향하고 ③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는 간단한 3단계지만 몇 가지 주의점이 있다. 

첫째, 안전핀이 위·아래 손잡이 사이에 끼어 있어 한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쥔 상태에서는 다른 손으로 안전핀을 뽑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한 손으로는 아래쪽 손잡이 또는 소화기 몸통을 잡은 상태에서 다른 손으로 안전핀을 뽑아야 한다. 
둘째, 실외에서는 연기, 불꽃 및 소화약제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을 등지고 소화기를 사용한다. 반면에 바람이 없는 아파트 가구 내에서는 초기 소화 실패 시 재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반드시 현관문을 등진 상태에서 소화기를 사용해야 한다. 
셋째, 가장 대중화된 분말소화기의 별칭은 ABC소화기다. 이는 일반가연물화재인 A급 화재, 유류화재인 B급 화재, 전기화재인 C급 화재에 적응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파트 가구 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초기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주방(Kitchen)에서 식용유를 취급하는 조리기구에서 일어나는 주방화재(K급 화재)는 ABC소화기의 적응성이 없으므로 별도의 K급 소화기 사용을 권한다. 
가을이 성큼 왔다. 매미 소리와 함께 여름은 보냈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화재 취약 시기인 겨울을 대비해 소화기에 관심을 쏟자. 10초의 쓰임을 위해 10년을 사는 소화기의 유지·관리법과 사용법을 잘 알고 실천한다면 아파트 가구 내 초기 화재에서 소화기 1대는 소방차 1대 이상의 역할을 다해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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