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적막은 여행자의 사색을 만들고, 섬다운 고유의 불편함으로 그 섬을 기억한다. 그런 섬이 그립다.

 

 

▲ 수기해변

섬의 적막은 여행자의 사색을 만들고, 섬다운 고유의 불편함으로 그 섬을 기억한다. 그런 섬이 그립다. 


섬들이 사라지고 있다. 승선권을 구입하고 배를 기다리는 동안 반짝이는 바다의 빛깔과 갈매기들의 부드러운 유영을 바라보며, 바람에 실려 온 바다 냄새가 풍기는 작은 항구의 풍경들을 생각한다. 배를 타고 가며 갈매기에 새우깡을 던져주던 소소한 기억들. 수도권 서해의 섬들은 하나씩 육지와 연결되며 섬 아닌 육지가 돼갔다. 강화도와 연결된 교동도, 석모도는 주말이면 차량 행렬이 줄을 잇는다. 영종도 주변의 섬들은 국제공항이 들어서며 메워지거나 하나의 섬이 됐다. 그나마 남아 있던 무의도와 소무의도 역시 대교가 건설되며 섬의 개발이 도를 넘어 넘치는 차량으로 주차장이 됐다. 섬들에 대한 기억들은 벌써 추억으로 남고 아쉬운 마음으로 섬이 주는 적막과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나본다.

 

▲ 수기해변

섬에서 섬으로 걷다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신도로 간다. 
신·시·모도는 삼형제 섬으로 불린다.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섬들이니 교통 또한 다른 섬에 비하면 불편하지 않다.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재단이 선정한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해양문화·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53번째 해안누리길에 신도·시도·모도는 ‘인천 삼형제 섬길’로 이름 지어졌다. 
세 섬의 면적을 합쳐봐야 고작 8㎢로 작은 섬들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신도에서 모도 배미꾸미 해변까지는 9.5㎞에 이르는 길로 전부 돌아보는 데 4~5시간이면 충분하다. 신도는 믿을 신(信)에 섬 도(島)다. 
신도선착장에 내려 해안누리길 안내판을 따라 10여 분 시도쪽으로 걸어가면 갈림길에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등산로를 따라 쉬엄쉬엄 올라가면 임도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왼쪽으로 가거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더라도 길은 서로 교차한다. 왼쪽 길은 해안누리길과 겹치는데 600m쯤 올라가면 신시도 연도교와 구봉산 정상, 진달래꽃길로 나눠지는 갈림길 공터가 나온다. 해안누리길은 신시도 연도교쪽으로 이어지고, 둘레길은 900m 떨어진 구봉산(179m) 정상을 거쳐 반대편 구봉정 쪽으로 이어진다.
구봉산을 중심으로 8자 형태로 조성된 둘레길은 6㎞에 달한다. 폭이 넓은 길로 숲 냄새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어 구봉산을 한 바퀴 돌듯 걷는 섬 트레킹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바닷길을 따라 섬과 섬 사이로 보이는 신오도와 시오도의 풍경을 보며 다리로 연결된 시도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해안누리길 ‘인천 삼형제길’이다. 
해당화꽃길과 시도염전 옆을 지나다보면 길은 이 섬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수기해변으로 이어진다. 수기해변은 완만하고 넓은 백사장으로 강화 마니산이 지척으로 보인다. 강화 마니산에서 활쏘기 훈련을 할 때 과녁으로 삼았다고 ‘살섬’으로 불렸다는 설로 시도(矢島)다. 시도는 바다가 정겹고 아름다워 풀하우스, 슬픈연가 등 드라마의 배경이 된 섬이다. 수기해변에서 언덕길을 따라 수기전망대에 오르면 강화도와 서해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숲길을 따라 바다로 내려가면 시도에서 모도로 가는 연도교를 만난다. 시도와 연결된 작은 섬 모도는 그물을 걷으면 물고기보다 띠풀이 많았다고 해서 띠염이라 불리다 모도(茅島)가 됐다. 모도를 건너는 연도교 왼편에는 바닷가 바위에서 바다로 달려가는 사람과 꿈을 꾸듯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소녀 조각상이 있다. 조각을 한 사람은 이일호(1946~)다. 

 

▲ 모도의 배미꾸미 조각공원

바다와 섬은 하나다

 “여름 가고 산들 바람 선듯 불어 가을이 오면 내 님 얼굴 풍뎅이처럼 맴도네 / 보름달이 둥실뜨고 귀뚜라미 호루루 울면 내 님 얼굴 유성기 판처럼 맴도네.” 
KBS1 ‘2018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가수 전인권은 이일호를 찾았다. 전인권은 “스물한 살 때 강인원이라는 친구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들었다. 그 노래가 바로 이일호 씨가 만든 ‘헛사랑’이었다. 그 노래가 너무 멋있었다”고 밝혔다. ‘헛사랑’은 1979년 전인권 1집에 수록된 곡으로 ‘맴도는 얼굴’로 발표됐으나 1988년 원래 제목으로 다시 발표됐다. 전인권의 음악 스승이라는 이일호는 문학, 음악, 영화, 미술 등  다재다능한 끼가 있었던 모양이다. 
모도의 끝자락 비포장도로로 들어서면 배미꾸미해변이 있다. 배미꾸미는 배의 밑구멍처럼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곳 해변에는 이일호의 조각품들이 잔디밭과 해무로 아스라한 장봉도와 수평을 이루는 모래펄에 바닷물에 잠기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2006)을 촬영한 장소로도 이름을 알리며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어우러진 나르시즘적인 사랑과 성, 알 듯 모를 듯 에로틱한 조각품을 보러 바닷가 카페를 찾아 들어왔다. 조각가 이일호의 작업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 버들선생2(2011) 이일호 作

“풍경에 홀려서 눌러앉았는데, 그 풍경이 나를 떠나보냈다. 어쩔 수 있나. 바다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바다는 공(空)이다. 그걸 내가 좋아했으니.” 아름다운 곳에서는 창작을 할 수 없다며 이일호는 북한산자락 아래로 작업실을 옮겼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그의 작업실이 있던 곳은 해변 조각공원으로 남아 아침과 저녁의 노을, 장봉도의 해무가 밀려와 조각품들과 어우러진 명소로 남았다. 사람들은 공원을 돌아보며 에로틱한 조각품들을 눈으로만 건성 본다. 어쩌다 찾은 섬에서 뜻하지 않은 조각품들을 만나니 어려운 예술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았을 터다. 

그가 말했다. “논리의 끝은 상징이다.” 그의 작품은 자전거를 형상화한 남녀, 두 사람의 입이 하나로 교합된 키스, 두 개 혹은 네 개의 신체 등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불이(不二)를 아담과 이브의 원초적 본질을 통해 ‘접속’ ‘윤회’ 등 연작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조각은 조각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인간의 본질, 쉽게 말해서 성과 오르가즘을 통해서 존재의 신비를 열고 있는 것이다”라고 미술 평론과 장석원은 말한다. 조각공원의 비석에는 ‘바다는 모도를 섬으로 고립시킬 생각이 없었고/모도 또한 바다의 품에 안기고 싶지 않았다/우리는 여기 왜 서있나(2004. 1. 14.)’라는 화두를 던져뒀다. 조각공원의 해초비빔밥은 섬만의 특색 있는 해초와 야채를 버무린 음식으로 공원을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과 함께 이 섬의 독특한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시·모도는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수도권의 작은 섬이지만 조용하고 정갈한 마을과 잘 다듬어진 도로가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아름다운 섬이다. 그것은 걷거나 자전거로 힐링하는 섬으로서 아직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육지와의 경계에 마지막 섬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는 섬. 신도 선착장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고 배 시간도 다른 섬과 달리 밤늦은 시간까지 운항하니 그 섬에서는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 

여행정보
대중교통으로는 공항철도 운서역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삼목선착장에 닿는다. 여객선은 매일 19차례 왕복 운항한다. 삼목선착장에서 첫 배가 오전 7시 10분 출발하고, 장봉도에서 출발하는 배는 신도선착장에서 오후 9시 50분 삼목선착장으로 출발한다.
•세종해운 : 편도 어른 2,000원, 승용차 1만원, 한림해운 : 어른 1,500원, 승용차 7,000원  
    

이성영  여행객원기자(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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