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등과 석유 등잔불의 추억

독자투고 강정석l승인2019.09.04 13:07:46l1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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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입주민
서울 성북구 정릉e편한세상

 

고향 집 초가삼간 방안은 문을 닫아도 바람이 들어왔다. 석유 등잔 불꽃이 흔들리며 춤추는 것을 보면 어디에선가 바람이 들어와 방안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토에 잘게 썬 볏짚을 섞어서 바른 흙벽 위에 신문지를 벽지 삼아 붙였지만, 흙이 마르고 오그라들면 벽에는 여기저기 가늘게 틈이 생겼다. 낮에 방안에 누워있으면 벽에 생긴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날카로운 햇빛이 얇은 면도날처럼 번뜩이며 얼굴을 베일 듯 스쳤다. 밤이 되면 그 작은 벽의 틈과 방문 틈을 비집고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바람맞은 석유 등잔 불꽃은 제멋대로 나풀거리며 오로라 같은 빛의 무늬를 만들어냈다. 나비 날갯짓이 만드는 바람보다도 약할 그 미세한 파동도 등잔 불꽃은 견뎌내지 못했다. 석유 등잔 불꽃은 가늘게 떨며 금방 꺼질 듯이 너풀너풀 춤을 춰댔다.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펼친 책 위에 내려온 희미한 불빛은 작은 얼룩무늬 파문을 만들며 더 큰 몸짓으로 따라서 춤을 췄다. 책 속의 글자도 덩달아 비틀거리며 일그러졌다. 흐릿하고 찌그러진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저 눈앞이 어리어리할 뿐이다. 이럴 때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석유 닳는다. 그만 불 끄고 자거라!” 
1950년대 중반 내 유소년 시절, 고향 마을 우리 동네에는 전기가 없었다. 밤이면 반딧불처럼 희미한 석유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그래도 별로 불평 없이 살았다. 마을 사람 전부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건 당연한 생활방식이었다. 밤이 되면 손때 묻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등잔대에 석유 등잔을 올려놓고 그 앞에 밥상을 폈다. 밥상이 내 책상이었다. 밥상 위 책장에 비추는 불빛은 흐릿했고 책 속의 글자는 흔들렸다. 어쩌다 촛불을 켜면 등잔불보다 몇 배나 밝아서 좋았지만, 촛불은 제사나 명절 때나 켤 수 있는 비싼 물건이었다. 
등잔 불꽃을 촛불처럼 더 크게 키우면 책이 더 잘 보일까 궁리를 했다. 심지에 불이 붙은 채로 등잔 뚜껑을 들어 올렸다. 창호지로 만든 심지를 손가락으로 잡아서 조금씩 올려 보았다. 불꽃은 이내 커졌지만, 검은색 그을음이 커진 불꽃과 함께 연기처럼 확 피어올랐다. 잠시만 그냥 두면 천장부터 온 방안이 온통 그을려 검댕이가 될 것 같았다. 얼른 심지를 도로 내렸다. 어두침침한 그 밝기가 등잔 불꽃이 가장 환한 상태였다. 사기로 만든 하얀 등잔은 내가 뚜껑을 건드릴 때마다 딸그락거렸고, 손가락에 묻은 석유 냄새가 코끝에 확 풍겨왔다. 석유는 잘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한참 동안 손가락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그때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밤에 불 갖고 장난하면 자다가 이불에 오줌 싼다.” 잔치라도 있는 날 밤에는 남포등을 켰다. 둥근 유리 갓 속 커다란 불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석유등의 몇 십 배는 될 만큼 밝고 힘이 넘쳤다. 호리병 모양의 유리 갓이 불꽃을 감싸고 있으므로 바람이 불어도 불꽃은 밝게 타올랐다. 밤길에 흔들고 다녀도 남포등 불꽃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항상 이렇게 밝은 빛을 내는 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남포등은 심지가 두껍고 넓은 만큼 석유를 많이 빨아올려 태우기 때문에 석유가 빨리 닳는다. 그 시절 촛불이나 남포등을 평소에 켜면서 사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아낙네들은 자기 집 석유 아끼려고 밤이면 이웃집으로 마실 다니며 길쌈을 하기도 했다. 내가 전깃불을 처음 본 것은 아랫마을 방앗간에서였다. 너무 밝아서 내 눈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전깃불을 보고 나자 우리 집 석유 등잔불은 더 초라했고 방안이 더 어둡게 보였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우리 동네 신작로에 전봇대가 박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전깃불이 들어왔다. 어린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천장의 형광등과 책상 위 램프에서 LED 빛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너무 눈이 부셔 램프의 불빛 밝기는 중간으로 줄여놨다. 이젠 밤과 낮의 구분이 없어졌다. 밤에는 커튼도 내리고 때로는 눈가리개까지 쓰고 잠을 청해야 한다.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석유 등잔의 불편했지만 따뜻했던 불빛이 그리워진다. 

강정석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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