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바람 앞에 서면 작아지는 미루나무와
폭우 앞에 몸집이 커지는 강물은 친구다
살아오는 동안 강둑만 친구 삼은 풀들은
양들의 혀를 기억하는 기도를 한다
낮은 음성이 하늘에 닿을까마는
몸짓만은 간절하다
퍼붓는 빗줄기를 맞으며 산들이 울음일 때 
풀은 한 조각의 빵도 입에 넣지 못했다
지상을 지배하는 것들은 다 장마였으므로

편의점 옆 백반집을 나서며
지폐 몇 장 건네는 인부들
그들이 지불한 지폐는 술과 밥과 이쑤시개의 값
장마로 여러 날 쉬었거나
한두 끼쯤 건너뛰었겠으나
그들의 기도문은 못과 망치와
철근 더미의 먼지를 터는 일

강둑의 풀들
간절한 기도는 마침내 장마를 쓸어내고
햇볕과 양 떼를 불러모았다
해는 퀴퀴한 냄새에 코를 쥐었겠으나
양들은 제 몸의 체온으로 빚은 환약을
아낌없이 쏟아 풀들에 지불했다
제 똥도 누군가에게 밥이 되는 이 거룩한 기도
혀 밑에 뜯어 심키는 풀잎이 양들에겐
인부들이 허기를 채우던 술이고 밥이다

강둑만 고집하던 풀들의 기도는 
산의 울음을 재우거나 
나무와 강물은 다시 친구가 되었다
풀들의 저녁은 이쑤시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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