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파트 발밑의 시한폭탄 ⑤ 67일 만의 ‘정상화’선언… 적수사태가 남긴 과제와 교훈

 

▲ 붉은 수돗물 50여 일째. 인천시와 인천상수도사업본부가 사고지역 관리사무소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감사인사와 함께 협조체계 구축 필요성을 설명했다.

◆ 관리사무소의 고군분투
인천지역 붉은 수돗물 사태가 정리수순에 들어갔다. 사고발생 60여 일째인 지난 7월 말, 해당지역 수돗물 상태를 확인해 보니 육안상으론 거의 ‘맑음’단계를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침전물을 살피는 등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수도꼭지용 투명필터도 깨끗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입주민들은 시청과 구청, 수도사업소에 항의하는 한편 관리사무소에도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거대한 상수도 공급체계의 총체적 난맥을 개별단지에서 해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고 초기 관리사무소장들은 공식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사태해결을 요구하는 주민민원을 응대하는 게 가장 곤혹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관공서에선 주민들의 항의전화를 받으면 사전협의 없이 동사무소나 관리사무소에 접수하라는 일방적 안내를 내보내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분노한 입주민들의 자발적인 집회와 시위가 조직되고,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과잉정보가 나돌며 민심이 더욱 흉흉해져갔다.
관리사무소들은 불가항력의 상황에서도 입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초기단계인 6월 초부터 저수조를 청소하고, 자체 정수시스템이 갖춰진 곳은 필터교체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편으론 시청에서 공급하는 생수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수시로 확인하며 수량 확대를 요청했다. 입주민들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시시각각 나오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며 주요내용을 즉시 공지하고, 주택관리사들 사이에도 SNS를 통해 실시간 상황을 공유했다.

◆ 대주관, 소통체계 구축 나서
처음엔 제각각이었던 시청-구청-상수도사업본부-지역수도사업소-동사무소 등 행정관청이 시간이 지나면서 합동대응팀을 만들고, 입주민과 가장 밀접한 관리현장과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각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엔 시청과의 소통창구를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채희범 인천시회장과 관리현장의 실상과 고충을 종합적으로 취합해 전달한 김영주 서구지부장의 역할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나서야 사태 해결의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시와 상수도사업본부가 오염된 수돗물을 대량방출하고, 각 아파트에도 공문을 보내 ‘수도요금을 감면하겠으니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저수조 물을 받아두지 말고 계속 흘려보낼 것’을 통지했다.

 

▲ 적수사태 당시 공동주택 상황을 전해준 청라지역 김윤재 주택관리사(왼쪽)와 검단지역 성보창 주택관리사(가운데) 그리고 입대의 김근수 회장

◆ 시 “관리협조체계 구축할 것”
적수 50여 일째 접어든 지난 7월 18일, 인천 서구 검단아이파크2차아파트 회의실에서 인천시와 인천시상수도사업본부가 적수발생지역의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들을 초빙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사태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명과 향후 원활한 공동대처를 위한 관계망을 구축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엔 인천시 건축계획과 김기문 과장, 공동주택센터 이상곤 팀장과 이득상 주무관 그리고 인천시 서부수도사업소 김양태 요금팀장 등이 나왔으며, 대주관 채희범 인천시회장과 김영주 서구지부장을 비롯해 50여 명의 해당지역 관리사무소장들이 참석했다.
인천시 김기문 과장은 “지역주민들의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고 수도체계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만들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특히 관리현장에서 고생한 주택관리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말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주택관리사의 전문가적 영역이 크게 부각됐으며, 박남춘 인천시장도 인정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앞으로는 현장의 소리를 경청하고 각 부문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됐다”고 전했다.
참석한 소장들도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소장은 “시와 상수도사업본부에선 보상시한을 설정해 조속히 마무리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주민들의 불만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대응이 더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소장은 “다음 달 위탁관리 계약만료를 앞둔 시점에 수돗물사태가 터지면서 단지 분위기가 악화돼 재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또 다른 소장은 “기초지자체에도 있는 공동주택 전담부서가 광역지자체인 인천시에 없다는 건 이해와 관심이 그만큼 부족하단 증거”라며 “지금이라도 속히 전담부서를 만들어 입주민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관리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천시 김기문 과장은 “이번에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들의 고충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됐으므로 만일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관리직원이 생긴다면 시가 직접 주민대표를 만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할 것”이라며 “수돗물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선 입주민들에게 어떠한 손해도 보상할 것을 약속하고, 다시는 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관리현장과의 공적 연락체계를 공고히 구축하겠다”고 답했다.

◆ ‘공공과 민간영역 협력’ 과제
사태발생 67일 만인 지난 5일 인천시는 공식적으로 ‘수돗물 정상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불량배관 교체 전까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반발하고 나서 심리적 정상화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천시는 사고지역의 6월분과 7월분 수도요금을 면제한 데 이어 8월분 수도요금도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5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의 생수 구입비와 필터 교체비, 수질검사비, 그리고 피부병과 위장질환 등의 의료비도 보상한다는 방침이다. 저수조 청소비 역시 신속히 보상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개별적인 피해보상신청도 받겠다고 공지하는 한편 오염 수돗물 공급 조기 차단을 위한 ‘인천시 수도급수 조례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사상초유의 붉은 수돗물 사태는 주민생활 불편뿐만 아니라 공공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초기대응에 실패해 더 큰 피해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재난대비 매뉴얼을 손봐야 한다는 교훈도 남겼다.
특히 국민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공동주택 관리현장과의 촘촘한 유기적 협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게 됐다.
대주관 채희범 인천시회장은 “대규모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가행정기구만으로 대처하는 게 얼마나 미흡한지 알게 됐다”며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 민간영역의 준공적기구와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깨닫게 해준 사태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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