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붉은 수돗물 사태가 정리수순을 밟고 있다.
적수 발생 67일 만인 지난 5일, 인천시는 공식적으로 ‘수돗물 정상화’를 선언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이제 수질은 피해 이전 상태로 회복됐다”며 “앞으로 보상 협의·시행과 근본적인 수질개선을 위한 단기, 중장기 상수도 혁신 과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1면>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일부 지역에서 녹물이 나오고 있다”며 집단 손해배상을 추진하겠다는 강경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민들의 심리적 정상화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이번 사태는 여러 가지 과제와 교훈을 함께 남겼다. 사태 초기 피해지역 아파트 입주민들은 처음엔 관리사무소에 항의했다. 단지 내 생활불편을 관리사무소에 먼저 따지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장과 직원들이 단지내부의 문제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오는 직수가 근본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자체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알려줘도 일부 입주민들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에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를 핑계 삼아 더욱 목청을 높이며 공격하고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관할관청의 그 어떤 정보도 전달받지 못한 상황에서 원성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던 관리직원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된다.
그나마 사태 발생 후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창구개설에 적극 나서고 시·구청과 수도사업소 등에서도 협조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관계구축을 위해 노력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건 주택관리사들의 SNS였다. 지역에서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는 주택관리사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안갯속 같았던 초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서로 큰 도움을 주고받았다. 정보화시대의 긍정적 단면이다.
지금 국가적으로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커다란 범국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제한조치에 대해 국민들의 일본 보이콧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지난달 초,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국 산업의 급소를 노렸다”고 말할 만큼 충격적인 조치였지만, 국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노재팬’을 선언하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본여행을 취소했다. 맥주와 화장품부터 자동차 등의 고가제품까지 수입량이 대폭 줄었다. 뿐만 아니라 DHC처럼 한국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가면서도 자회사 방송국을 통해선 혐한방송을 일삼는 악덕기업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일본 정부 덕분에 그동안 우리 안에 숨어서 은밀하게 기생해온 ‘토착왜구’의 실상을 비로소 파악하게 된 측면도 있다. 아베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일본정부가 놀라고, 우리 국민들 스스로도 놀란 건 일본 보이콧 운동이 국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커다란 활화산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정부나 특정단체에서 의도적으로 조직한 관제운동이었다면 국제적 이슈가 되기도 어렵고, 이렇게 뜨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수출금지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국민의 자발적 대규모 운동이 우리 정부의 협상력과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데는 분명 큰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 국민은 ‘방사능 올림픽’에 대한 역공까지 준비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당연한 요구임과 동시에 후쿠시마를 과대 과장광고한 아베정부의 자승자박이다.
근래 들어 시민사회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거버넌스’란 말이 유행이다. 이 말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지만, 가장 널리 쓰이는 뜻은 ‘민관협력’이다.
우리 정부의 자세와 별개로 국민운동이 뜨겁게 전개되는 현 상황에 대해 일본정부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정부를 뒤에서 떠받치는 대한민국 민관협력의 매우 아름다운 국제적 모델이다.
적수사태를 겪으며 인천시 역시 관리사무소와의 협력체계 구축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관리사무소는 민간영역이면서 공공업무를 집행하는 준공적기관이다. 정부와 협력하면 커다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정부가 모든 걸 알아서 하면 국민은 수동적 모래알이 된다.
국가위기 상황에선 깨어있는 시민의 일치된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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