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냉기

열린세상 오정순 수필가l승인2019.08.07 09:54:50l1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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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순 수필가

하늘이 절절 끓으며 열기를 내리꽂는다. 거리의 어디에서도 냉기를 느낄 수가 없다. 단지 완화치료실에서 이승의 마지막 산책을 끝낸 친구의 몸만 싸늘하게 식어 얼어있다. 일찍 이승의 소풍을 끝낸 사람보다는 조금 더 살았고 평균 수명에 비하면 모자라게 산 것 같은 애석한 죽음이다. 어느 장례식장인들 유쾌하고 즐겁겠는가 만은 망자의 딸이 한 말이 내 가슴에 대못으로 박힌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공포스러운데…”
통곡소리와 함께 흘러나온 말은 장례절차에서 비롯됐다. 상조회사와 천주교식 장례 중 어느 식으로 하겠느냐고 상주에게 물었다. 천주교식이라고 답을 하고 나자 성당의 연령회에서는 장례절차를 밟는 데 필요한 물건을 챙겨 병원 장례식장으로 왔다. 상조회사는 돈을 받았으므로 의무를 이행할 권리가 있고 성당 사람들은 전체 형식을 천주교식으로 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세상에 돈을 들이지 않는 곳은 없으므로 어린 상주 측에서는 당연히 이중 지출을 막기 위해 선 지불을 한 상조회사에 일임을 하고 말았다. 개별적으로 천주교식으로 입관예절을 예비하고 성당에서 영결미사를 하기로 마무리를 짓게 됐다. 모든 장례절차를 무료로 봉사해주러 온 성당의 연령회에서는 얼마나 낯설었을까.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하나, 천주교의 장례봉사가 있었다. 그것을 미처 알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애통하지만 누군가가 알아서 보내줘야 한다. 남은 자의 방식대로 치러지는 것이 인생이다. 
결국 사람의 생은 죽음에 이르면 가는 것도 내 몫이 아니다. 죽은 자는 침묵으로 산 자를 가르치고 떠난다. 내가 만약 친구의 문상을 와서 하루 종일 있어 보지 않았다면 이러한 부딪침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천주교 식이라 해도 각 성당마다 조금씩 다르게 운영하고 있어서 한 번의 경험에 비춰 그냥 그 방식을 믿고 진행하다가 망자를 사이에 두고 불편한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만사는 확인하고 재확인을 하면서 생의 마지막 길을 내야 하며 종국에는 한줌 재를 묻고 이승에서의 역사를 끝낸다.    
어찌 그 한 가지 뿐이겠는가. 여러 곳에서 모여든 문상객들 사이로 흘러다니는 말을 듣다 보면 평소에 접하지 못한 부분이 들춰지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문상객이 찾아와서 놀라기도 한다. 20년 남짓 교류 없이 살던 친구가 찾아 오기도 하고 금방 달려올 것 같은데 얼굴을 비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문상객들 사이로 흘러다니는 말의 물결을 느껴보는 것은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얻는 지혜보다 값이 크다. 어느 대목에서는 망자의 생이 빛나고 어느 대목에서는 가면을 벗고 나온 말이 언 몸을 더 얼리듯 냉기가 돈다.
세상 살면서 흉내내기로 산 것은 열매도 흉내만 내고 맛이 없다. 그러나 진국으로 산 부분은 열매도 달다. 나는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두 가지 맛을 다 봤다. 마음에서 사랑이 일지 않아 사랑하라고 하는 계명을 도저히 지킬 수가 없어서 종교를 바꿔가며 수련하던 그녀가 변했다. 영정 사진 속의 그녀는 어둠을 벗고 화사하게 웃고 있다. 
정성들여 자기 관리를 하면서 죽는 날까지 마음을 닦더니 얼굴에까지 그 빛이 도달했다. 그러는 사이 몸이 망가진 거였다. 친정 부모를 한 집에서 봉양하고 살다가 아버지를 보내고 마음 아파하더니, 본인이 아파지니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고 투병을 하다가 명줄을 놓고 말았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의식에서 내려놓고 제 갈 길을 의연하게 가고 있었다. 
삶에 대해 기술한 어떤 책보다 가르침의 힘이 큰 것은 죽음이란 책이다. 망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면 보석같은 가르침이 쏟아진다. 가진 조건보다 지나치게 욕구가 강하면 삶이 부서지고 몸이 망가진다. 지나쳐서 망치는 것보다는 부족한 듯 여유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누구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고민할 것이 없다. 
멀리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사랑하고 그날의 역사를 짓는 것이다. 하루가 영원으로 이어질 것이므로. 냉방을 하지 않아도 어제 문상 중에 스며든 인생의 냉기로 나는 지금 마음이 저리다. 이 또한 지나갈 바람이니 이 글로 바람 길을 내준다.  

오정순 수필가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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