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지만, 대체로 첫손에 꼽는 건 급여와 발전 가능성 그리고 안정성이다.
젊은이들의 선호도 역시 이 기준에 부합한다. 삼성, 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급여가 꽤 높다. 같은 학교를 나와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취업은 두 배 이상의 연봉 차이를 보인다. 이는 차도 두 배, 집도 두 배, 생활격차도 두 배로 벌어지는 걸 뜻한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은 청년들에게 선망의 직장이었고, 미혼여성에게도 신랑감 상위권에 꼽혔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IMF외환위기를 겪으며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잘 나가던 대기업, 금융업 종사자들이 졸지에 실업자 딱지를 붙이고 대거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그 후 현재의 급여는 더욱 올랐음에도 대기업에 입사하자마자 사표를 던지거나, 처음부터 쳐다보지도 않는 대졸자가 늘었다. 안정성이 취약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피라미드 구조의 대기업에서 평사원부터 대리- 과장-차장-부장으로 승진하기까지 대략 20년 정도 걸린다고 볼 때, 부장까지 생존할 확률은 10% 안팎이다. ‘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이사는 정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일까? ‘별’은 죄다 SKY출신이다. 웬만한 학벌과 라인이 아니면 꿈도 꾸지 않는 게 건강에 이롭다. 과장을 달기 위해서도 입사 동기의 절반 이상을 따돌려야 한다. 가히 정글이다. 대기업은 화려하고, 직원으로서도 폼나는 자리지만, 대부분은 20년도 버티지 못하고 ‘자의반타의반’으로 밀려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자식이 대학에 다니거나 결혼을 앞둔 나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55~64세 ‘신중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종사했던 직업을 그만둔 나이가 평균 49.4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쉰도 되기 전에 안정적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을 찾아나서야 하는 현실이 통계로 입증된 것이다.
한창 벌어야 할 때 내몰리다시피 퇴직하고, 젊음을 바친 대가로 받은 퇴직금마저 자영업으로 날리는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보며 자란 청년들은 요즘 공기업, 공사, 공무원으로 몰린다. 겉모습이 다가 아님을 체감했다. 고액 연봉은 잠깐일 뿐, 정년까지 버티기가 최후의 승자다.
위 조건들 외에도 중요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항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분위기다. 정글 같은 회사를 진짜 동물의 왕국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인간미 넘치는 공동체로 만드느냐를 결정짓는 건 크게는 회사 전체의 분위기고 작게는 한 부서, 한 사무실의 분위기다.
엄격하고 일사분란한 분위기가 조직을 긴장시키고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개인의 창의력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는 비효율적이다.
공동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입주민 간 반목과 파벌싸움을 벌이고, 관리직원을 사적으로 부리며, 갑질이 난무하는 아파트에서 능률적 관리를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가 열리길 바라는 것과 같다. 목소리 큰 입주민의 독단과 전횡이 판치는 아파트는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고 종국적 피해는 모두 전체 입주민에게 귀결된다.
얼마 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명문화됐다. 앞으론 상사나 동료의 괴롭힘도 징계대상이 된다. 그동안 폭력이나 부당노동행위, 성희롱 등 눈에 보이는 ‘불이익’은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은밀한 괴롭힘에 대해선 저항하기 어려웠다. 더 큰 불이익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통념상 ‘업무상 적정범위’에서 벗어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간주한다. 조직의 약자에게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다. 이 조항이 공동주택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겠지만, 공동주택관리법이나 앞으로 만들어질 주택관리사법에 명문화하는 것도 감안해볼 만하다.
좋은 분위기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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