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김미정 서울 더샵서초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두 살 터울의 개구쟁이 녀석들 덕분에 난 동네에서 유명한 엄마였다. 어떤 엄마는 우리 집을 귀여운 동물원이라고까지 했다. 
아래층에는 섬세한 성격의 생물학 교수 내외가 조용히 살고 있었다. 두 녀석들이 뛰는 것 때문에 불편해한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터 나는 매일 안절부절 했다. 그리고 한 동네 사는 딸로부터 교수가 약주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명절 때는 양주를 선물했다. 동네에서 마주치면 나도 녀석들도 90도로 인사를 했고 녀석들은 평소 엄마한테 훈련받은 대로 “교수님, 뛰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 교수는 “건강하구나!” 말하며 빙그레 웃어줬다. 
두 녀석들의 머리까지 쓰다듬어 줄 땐 엄마로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무튼 두 녀석들 인사 하나만큼은 정말 잘 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이도 웃었다. 그 아내는 이해를 해주면서도 섬세한 남편 때문에 가끔 벨을 누르시고는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난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고 녀석들을 또 다그쳐야 했다. 지나고 보니 교수 내외가 오랫동안 불편했을 텐데도 우리 두 녀석들을  예뻐해 준 것 같아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나는 거실에 아주 두꺼운 카펫을 깔아놨고 그 위에 또 요를 깔고 나름 대책을 마련하느라 늘 노심초사했다. 그 당시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뛰지 마!”였다. 그런데 항상 뛰고 난 뒤에 말하게 되곤 했다. 내가 직접 슬로우 비디오 동작을 녀석들에게 보여주며 그렇게 하라고까지 했다. 두 녀석은 깁스를 번갈아 가며 할 정도로 개구쟁이였고 이 엄마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 가족이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녀석들은 오히려 교수님이 자기들을 예뻐해 준다고 하며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일기장을 보면 “피곤한 하루였다”가 참 많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나에게 하루 다섯 끼를 먹으라고까지 하면서 내편을 들어줬고 개구쟁이 두 녀석을 잘 챙겨줬다. 언젠가 더운 여름날 둘째 녀석이 보이지 않아 찾았더니 경비실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고 경비아저씨는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게다가 잠들기 전에 아저씨 점심 도시락까지 같이 먹었다고 한다. 언젠가는 경비아저씨와 닭발도 같이 구워서 먹을 정도로 넉살이 좋은 녀석이었다. 집안에서도 녀석들이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치는 일이 빈번해서 가구 모퉁이마다 스펀지를 한 뭉치씩 갖다 대고 넓은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였다. 식탁 의자는 전쟁놀이 도구가 되고 벽면은 자연스럽게 스케치북 역할을 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전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며 우울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 또한 미소 짓게 하는 삶의 흔적이요 사람 사는 이야기다. 
많이 그립다. 그렇게 유명한 개구쟁이 녀석들이었건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제는 서로를 바라보고 얘기를 들어주고 염려해주고 도움을 주는 모습이 흐뭇하다. 의좋은 형제로 오래오래 살아주길 기도한다. 30여 년이 흘렀어도 두 녀석은 나에게 언제나 나이든 어린아이다. 
그 시절 201호 교수 내외, 그리고 경비아저씨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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