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자연관찰의 장이다

독자투고 정선모l승인2019.07.03 13:34:37l1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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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모 
서울 노원 불암대림아파트
도서출판SUN 대표


요즘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꽃 잔치가 한창이다. 겨울이 끝날 무렵 생강나무가 은은한 노란빛 꽃술 같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어느 날 갑자기 벚꽃이 뭉게뭉게 피어나 한창 꽃구름을 만든다. 아파트 울타리에서 개나리가 아가의 웃음처럼 까르륵대며 피기 시작하면, 곧이어 목련이 소담하게 피어나고, 이에 질세라 꽃사과나무도 분홍빛 꽃망울을 슬그머니 밀어낸다. 그때쯤이면 봇물 터지듯 피어나는 모과나무도 라일락도 꽃 잔치에 고개를 들이민다. 무대의 주인공처럼 영산홍마저 피어나면 본격적인 꽃 잔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꽃으로 가득한 아파트 화단은 훌륭한 자연관찰의 장이다. 12살인 외손자는 아기 때부터 같이 살았다. 틈만 나면 데리고 나가 햇볕도 쬐게 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놀이터를 자주 찾았다. 한참 놀다 싫증 날 때쯤이면 화단을 들여다보며 식물도 관찰하고, 개미도 들여다보게 했다. 아이는 무척 즐거워했다. 그때부터 화단의 모든 식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나는 식물은 생각보다 매우 다양했다. 화단에는 수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제비꽃이나 별꽃처럼 아이가 좋아할 만한 식물도 매우 많다. 봄이면 여기저기 뾰족하게 올라오는 옥잠화 잎에 손자는 ‘도깨비 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현관 옆에 피는 주황색 장미는 제 어미가 좋아하는 꽃이라며 ‘엄마꽃’이라고 부른다. 
경로당 옆에 줄지어 있는 쥐똥나무는 이름에 비해 자잘하게 피는 흰 꽃의 향기가 엄청 진하다는 사실을 알려줬더니 그곳에만 가면 코를 킁킁거리며 향을 맡는다. 그 옆 빈터에 코스모스 씨를 뿌려 가을이면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피어난다. 그러면 또 각자 다른 꽃 색깔을 비교하며 신기해한다. 코스모스에는 유난히 잠자리가 잘 앉는다.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아이의 눈망울이 반짝반짝, 마치 별처럼 영롱하다.
꽃 이름을 익히고, 꽃잎의 개수를 세고, 색깔을 비교하기도 하며 식물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간 아이는 지금 식물박사가 됐다. 이젠 나무나 풀마다 잎의 모양이나 자라는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안다. 줄기에 나란히 자라는 것도 있고, 서로 어긋나게 자라는 것도 있다고 내게 설명해줄 정도다. 하나의 줄기에 여러 잎이 동시에 자라는 것도 있고, 딱 하나만 자라는 잎도 있다는 사실도 가르쳐준다. 
식물의 이름을 익히며 자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키운 까닭인지 깨끗한 환경을 지켜내는 것에 대한 관심이 크다. 휴지 한 조각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며칠 전, 제 엄마와 산책하던 중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 컵에 단물이 남아 “연제야, 이거 장미에게 뿌려줄까? 단맛을 장미도 좋아하겠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손주가 정색하며 “그러면 안돼요. 단맛을 좋아하는 개미들이 몰려들어 장미를 괴롭힐 거예요”라고 했다.
자연을 관찰하며 저절로 배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제대로 실천하는 우리 손주, 참 예쁘게 자라고 있다. 모두 아파트 화단 덕분이다.

 

정선모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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