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 has a moral, ethical and economic responsibility to tax our wealth more.…Instituting a wealth tax is in the interest of our republic.
-미국은 우리가 가진 재산에 세금을 더 부과해야 하는 도덕적·윤리적·경제적 책임이 있다.…부유세 도입은 우리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

이 글은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차기 대선에 나설 후보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의 일부분이다. 놀랍게도 자신과 같은 거부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다.
‘부유세 지지서한(A LETTER IN SUPPORT OF A WEALTH TAX)’이란 제목의 편지엔 초특급부자 19명이 서명했는데, 이 중엔 ‘헤지펀드계의 전설’ 조지 소로스와 ‘월트디즈니’의 손녀딸 애비게일 디즈니, ‘하얏트 호텔 상속녀’ 리젤 프리츠커 시먼스,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의 딸 몰리 밍거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미국의 새로운 세원은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 아닌 가장 부유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로부터 나와야 한다”며 “부유세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고(Powerful Tool for Solving Our Climate Crisis), 미국에 경제적 승리를 안길 것이며(Economic Winner for America), 국민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Make Americans Healthier), 부유세는 공정하며(A Wealth Tax Is Fair),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화한다(Strengthens American Freedom and Democracy)”고 주장한다. 심지어 부유세가 애국적(A Wealth Tax Is Patriotic)이란 말도 썼다. 부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억만장자들의 ‘부유세’ 도입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워런버핏은 자신(17.4%)보다 비서(35.8%)가 훨씬 더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고 있다며 세금 불평등을 지적했다. 국가가 ‘웅담’은 놔두고 ‘벼룩의 간’만 집요하게 빼먹어 왔음을 폭로한 것이다. 다른 부자들도 기꺼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음을 여러 번 표명했다. 기부 규모도 엄청나다. 빌게이츠는 3명의 자식들에게 0.1%도 안 되는 재산만 상속하겠다고 했고, 워런버핏도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저커버그는 딸이 태어나자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딸이 더 나은 세상에 살길 바라기 때문”이란 말을 덧붙였다. 이 세 사람은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해 발표한 전 세계 부호 5위 안에 드는 거부들이다. 이들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사람의 탈을 쓴 천사인 걸까?
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 30여 년 동안 미국 하위 50%의 부가 9,000억달러 줄어든 반면, 상위 1%는 21조달러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너무 천문학적이어서 실감나지 않지만, 대략 국민 절반이 잃은 총 재산의 두 배 이상이 1%에게 돌아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부의 불평등 현상이 극도로 심화돼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저자인 토마피케티를 일약 세계적 스타 경제학자로 발돋움시킨 명저 ‘21세기자본’에서도 규명돼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편지는 “이같은 불균형은 분노를 일으키고 노동계급의 계층 상승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This imbalance creates resentment and makes it harder for working-class Americans to achieve social mobility)”고 고백한다. 불평등사회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파탄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하늘이 내린 ‘착한 천사들’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이다.
부유세 논란은 어디서나 뜨겁다. 시행 중인 나라도 몇 안 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세금논쟁이 아니라 공정성이다. 이는 사회의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된다. 프랑스는 마크롱 당선 후 부유세를 폐지하고 유류세 인상을 발표했다가 노란조끼시위대의 거센 역풍을 맞았고, 그 전엔 미국에서도 월가점령시위 태풍이 불었다.
자본주의의 진짜 적은 머릿속 사회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양극화다. 시장만능주의로 위장한 불공정사회는 서민에 대한 사기극이고, 영구적일 수도 없다. 그리고 불평등과 양극화는 한국에서 더욱 극심하다.
부유세는 고사하고, 착한 것도 필요 없고, 그저 현명한 부자들을 우리 사회에서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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