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늘도 나는 깨알 타령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난 그릇에 통깨가 다닥다닥 붙어있거나 양념에 함께 버무려진 채 씻겨 내려갈 운명에 놓이면 내 안에서는 탄식이 나온다. 그래서 그릇에 깨알을 붙여두고 수저를 놓으면 나는 남김없이 먹으라고 채근한다. 언젠가 나물 접시에 붙어서 씻겨 내려가는 깨알 하나를 묵상하고부터 깨알에 집착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그릇의 통깨를 거의 남기지 않고 내 입안으로 들여보낸다. 천천히 경건하게 깨알을 씹어 고소함을 음미하고 나면 마치 그들을 구제해 인간으로 승격시켜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한 알의 깨알이 사람에게 먹히면 인간의 일부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그 깨알에 감정이 있다면 식탁에 오르면 월드컵 결승전에 이른 셈이다. 그러다가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결승전의 골인처럼 환희 벅찰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본디 식물을 재배한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먹거리로 사용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그 전제된 목적지가 바로 인간의 입인데, 입까지 오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살펴본다면 감히 그 작은 깨알 하나라도 의미 없이 버릴 수가 없다. 
올해처럼 비가 적은 해에는 목마름도 견뎌야 하고 홍수가 나도 그 축축함을 견뎌내야 하며, 뿌리가 패이는 날이면 다 자라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알곡으로 익을 때까지는 저들의 수고가 관건이겠지만 그 다음 여정은 운명에 맡겨야 한다.  
깨알은 작지만 꽃은 관상용으로 본다고 해도 좋을 듯 소박하고 귀엽다. 연한 분홍색은 아기 살색을 닮았다. 하지만 깨꽃을 보기 위해 깨 씨를 뿌리지는 않는다. 씨앗은 주머니에 모여서 자라고 익는데, 다 익으면 베어서 말리고 털면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 팔려가면서 이별도 맛봐야 한다. 또 다시 운명은 바뀐다. 무엇이 되든 뜨거운 불에서 볶여야 하며 그 과정을 거치면 기름으로 짜여지는 것들은 한바탕 비명소리를 더 질러야만 최종 먹거리로 등장한다. 
그러나 깨강정은 달달한 물엿과 만나서 절대 헤어질 수 없이 엉겨 붙는 운명에 놓이고 완성품이 되면 한 팔자로 엮여서 인간에게 먹히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통깨로 사용되려면 혼자며 여럿인 형태로 불에 달궈진 쇠판에서 타지 못하게 저어주는 가운데 볶인다. 입 안에 들어가 깨물면 고소한 향기를 낸다. 마지막 관문인 인간의 입에 들어가기까지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경로를 거치지 않으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기’가 되고 만다. 우선 씻을 때, 부주의한 주부의 손을 만나면 부실한 깨알은 물살에 쓸려 내려가서 인간의 입에 도달하기도 전에 탈락하고 만다. 아슬아슬한 곡예 끝에 씻기는 데까지 도달해도 볶는 과정에서 불에 약한 놈이 느닷없이 튀어서 도중하차하기도 한다. 더 이상 고생은 없다고 볶은 깨를 병속에 담아둔다. 보송보송해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저들은 음식을 하고 마지막에 고명처럼 뿌려주면 보기에 맛깔스럽다. 간간이 입안에서 씹히면 고소함을 더해준다. 
음식의 본질은 사람을 살게 하는 영양소다. 그러나 먹는 사람이 충실하게 먹어주지 않으면 그 본질을 흐리고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나는 음식점에서 음식 남기는 것이 참 싫다. 야채나 고기, 생선 등은 일부지만, 참깨나 곡물 한 알은 식탁에까지 오지 않고 통째로 생 것이라면 땅에 묻혀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고 열매 맺을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소중하게 먹어주고 싶다. 참깨 한 알에 대한 생의 예의를 지켜준다는 의미다.  
한해살이 식물의 열매를 불에 볶아놓고 먹어주지 않으면 종자의 끝을 보고 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대체로 쌀, 보리, 콩 조, 수수 등 곡물도 한 포기에 개체수가 많게 달리는 이유로 먹고, 동물이나 사람이 먹고도 남아야 종족보존을 할 수 있으므로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게 아닌가 싶다. 그중에 작은 깨알이야 주식이 아니라도 우리네 식탁에서 최종적으로 맛을 내는 일등공신이 아니던가. 저들은 씨알을 맺는 데까지가 몫이고 인간의 먹거리로 입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운명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도 결국 여정을 중단하게 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노래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자연사 하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 앞에서도 산 것에 대해 노래해야 하는 이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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