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석  입주민
서울 성북구 정릉e편한세상

아파트 발코니에서 보이는 북한산 녹음이 짙어졌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에 끌려서 ‘모터사이클’을 몰고 라이딩을 나왔다. 녀석도 덩달아 좋아하며 ‘두두둥~ 두둥~ ’기분 좋게 몸을 흔들어 댄다. 
목적지는 양평에 있는 황순원 문학관이다. 핸들에 매단 휴대전화 티맵에서 좌회전을 지시한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1차선에 들어섰다. 좌회전 교차로까지는 50여 m 남아 있다. 1차선에서 좌회전 대기 중인 차가 열 대쯤 된다. 몇 대는 깜빡이를 안 켠 채로 서 있다. 신호가 바뀌고 좌회전이 시작됐다.
한 대, 두 대, 세 대… 좌측 깜빡이를 안 켠 채로 좌회전하는 차가 4대였다. 나는 뒤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으므로 더 잘 보인다. 10대의 차 중 4대가 신호위반이다. 기본 교통규칙위반이 40%다. 실망감이 몰려왔다. 기본 원칙과 상식을 지키지 않은 무감각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참 많다. 휴게소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산과 강과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옆에 끼고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조망이 좋은 곳에 원목의 질감을 살린 벤치와 탁자도 있었다. 따뜻한 커피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투명한 커피 잔 한 개가 덩그러니 있었다. 커피도 조금 남아 있는 게 보인다. 아래쪽 테이블 다리 옆에도 찌그러진 종이컵 몇 개와 휴지와 담배꽁초들이 버리고 떠난 주인을 원망하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10m 떨어진 곳에 커다란 분리수거통도 보인다. 조금 전 좋았던 기분이 언짢아졌다. 이런 것에 좀 둔감하게 살자고 마음먹지만 내공이 부족한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나는 일 년에 몇 번씩 ‘5S캠페인’(5S는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를 상징)을 벌이는 회사에서 평생 일했으니 이건 일종의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5S캠페인을 벌일 때면 나는 홍보용 만화포스터를 그렸다.
여름철이면 회사에서는 요구르트와 수박을 점심시간에 제공했다. 그날은 회사의 온갖 곳에는 먹고 버린 요구르트병과 수박껍질들이 나뒹굴었다. 하루만 지나도 수박껍질에는 온갖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청소하는 데 또 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심지어 수박을 제공하지 말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다. 외부 손님도 많이 오는데 그게 참 창피했다. 가 보지 않아도 안다. 똑같은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으리란 것을….
선진국 일등사회로 가는 검증된 길은 이미 명료하게 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가나 공동체 구성원이 동의해 정해진 타당성·보편성·합리성을 갖는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전원이 항상 지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휴지나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나, 자동차 깜빡이 켜기 등이다. 이 기초원칙을 습관적으로 위반하는 것은 인권·평등·종교·정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냥 그 사람 골수에 박혀있는 나쁘고 하찮은 습관일 따름이다. 정치적인 것은 각자가 자기 믿는 대로 살아도 좋다. 그러나 기초질서 지키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 자기가 한 약속 지키기, 이런 것들은 마땅히 누구나 항상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것이 생활화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손가락 까닥하는 것도 귀찮아 깜박이를 안 켜는 사람이 30~40%나 되는데 이 어려운 것을 어떻게 지키겠는가. 이런 기초 원리 원칙을 공동체를 구성하는 전원이 습관적으로 지킬 때 그 사회는 일등사회고 진정한 선진국일 것이다.
아파트 벤치 주위에서 가끔 보게 되는 담배꽁초와 아무렇게나 버려진 음료수 캔을 보면 유쾌한 라이딩 기분을 구겨놨던, 공공장소에 버려진 보기 흉한 커피 잔이 생각난다.
‘층간소음 방지에 협조해 주세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하지 마세요’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면 위층으로 연기가 올라오니 금연 협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하는 이런 게시물 따위가 필요 없는 세상을 오늘도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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