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산천은 온통 진초록이다. 한낮의 더운 열기는 사람들을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내몬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이다. 때 이른 더위를 마주하며 오산으로 가는 길. 강과 바다는 볼 수 없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연녹색 들판이 참으로 싱그럽다. 하늘과 땅이 키운 순수한 자연이다.  
오산은 경기도의 중심 도시지만 외지인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이 고장을 대표하는 여행지가 있으니 바로 오산시의 유일한 국가지정 문화재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독산성’과 ‘세마대’다. 이 두 곳은 삼림욕과 트레킹을 겸할 수 있어 오산 사람들은 물론 수도권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솔숲 그윽한 독산성 산길

 오산시내에서 독산성을 찾아간다. 세마대(洗馬臺)와 독산성(禿山城)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고 좁은 산길을 오른다. 인적 없는 오붓한 산길을 얼마쯤 올랐을까. 삼림욕장을 지나 보적사란 암자에 다다르니 아득히 펼쳐진 오산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몸에 엉겨 붙은 땀을 씻어준다. 절집 특유의 고요함이 흐르는 암자 경내에서 잠시 마음의 때를 지운다. 아집과 욕심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잠시나마 본래의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즐거움이 아닌가. 
 두터운 독산성 성문(북문)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 보적사는 서기 401년 백제의 아행왕이 전쟁 승리를 빌며 세웠다고 전한다. 가람을 둘러싼 성곽은 그 옛날 삼국전쟁을 어렴풋이 그려보게 한다. ‘보적사’라는 절 이름은 춘궁기에 먹을 것이 쌀 한 되밖에 없던 노부부가, 이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공양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보적사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독산성의 역사도 예사롭지 않다. 임진왜란이 한참이던 선조 26년, 권율 장군은 이곳 독산성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수많은 왜적을 물리쳤다. 한양으로 접근한 기요마사 부대를 상대로 독산성의 지세를 최대한 활용,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독산성은 사방이 바위로 이뤄진 벼랑이었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험한 산세로, 적이 밑에서 치고 올라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조총으로 무장한 왜적은 산성 밑에서 권율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군에게 큰 봉변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난관에 처하자 순간 묘안이 떠오른 왜장 가토는 “저 산성의 지세는 사방이 바위뿐이다. 분명히 물이 없을 것이다. 군사를 뒤로 물리고 조선군의 물과 양식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며칠만 포위하고 있으면 저절로 투항할 것이다”라고 으름장을 놨다. 
 가토의 예상대로 조선군은 목이 말라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권율 장군은 “걱정할 것 없다. 왜적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말과 쌀을 내라”라고 명령했다. 그런 다음 준비해온 말을 매어놓고 말 등에 쌀을 끼얹게 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말을 목욕 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해 물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토는 “아, 내 착오였다. 물이 저렇게 많다면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 즉시 퇴각하라”며 작전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백제시대에 쌓은 독산성은 둘레가 3.6㎞로 걸어서 40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다. 4개의 성문을 두고 있으며 현재 석축 약 400m가 남아 있다. 성곽을 따라 난 오솔길 양편으론 짙푸른 녹음이 무성하다. 여기저기 피어난 야생화와 갖가지 수목들은 태초의 자연 그대로다. 곳곳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풀벌레 소리, 새 소리를 듣다 보면 이곳이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다. 
 한편 독산성길은 조선시대 실학자 신경준이 1770년에 집필한 ‘도로고(道路考)’에 명시된 총 6개의 옛길(삼남로·의주로·영남로·강화로·경흥로·평해로) 중 삼남길(과천-평택)이 지나는 곳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깊다. 삼남길은 조선시대 10대 대로 중 가장 긴 도보길로 최근에 서울에서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까지 새롭게 조성됐다. 한양과 충청, 경상, 전라, 삼남지방을 연결한다 해서 삼남대로라 불렸다. 수원에서 화성을 거쳐 오산에 이르는 33.4㎞의 도보 여행길을 걷다 보면 다채로운 자연색과 구석기 고인돌을 만날 수 있고 정조의 역사적 이야깃거리를 느끼고 볼 수 있다.  

삼림욕장에서 맑은 공기 마시기

 독산성 중앙에는 쌀로 말을 씻겼다 해서 이름 붙은 세마대(洗馬臺)가 서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누각으로 일제 치하 일본인들이 파괴했던 것을 이승만 대통령 시절 중건했다. 
흘림체인 ‘세마대’란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세마대의 사연을 적어놓은 중건기에는 1957년 오산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마대를 복원했다는 사실과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이 나와 있다. 
누각이 서 있는 산봉우리는 밋밋한 평원으로 전나무, 떡갈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무더위가 싹 달아난다. 나무들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오산 평야와 오밀조밀 들어선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왔던 길을 되짚어 5분 정도 내려가면 삼림욕장이 있다. 잣나무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 향기를 온몸으로 맡으며 산책로를 거니노라면 몸과 마음이 즐겁다. 각종 운동기구가 갖춰진 체력단련장은 이곳만의 자랑거리. 
 세마대가 있는 독산성은 하이킹 코스로도 제격이다. 자녀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듯. 몸도 마음도 녹색으로 물 드는 6월, 역사의 체취가 서린 독산성과 세마대를 찾아 심신의 활력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 수생식물원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
        
 수도권 전철 1호선 오산대역에서 5분 거리인 임업시험장 내에는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조성된 물향기수목원이 있다. 수목원이 들어선 ‘수청동’은 이름 그대로 맑은 물이 많다는 동네로, ‘물향기’수목원은 여기서 따왔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수목원은 예쁜 이름만큼이나 볼거리가 많다. 
 약 10만평의 부지에 습지생태원, 수생식물원, 한국의 소나무원, 단풍나무원, 유실수원, 분재원, 무궁화원 등 19개 테마원과 산림전시관, 숲속쉼터, 잔디광장, 전망대 따위의 부대시설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야외 주제원 외에 나비,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같은 곤충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곤충생태원, 닭·꿩·공작 등을 사육하는 관상조류원, 겨울에도 푸른 잎을 볼 수 있도록 꾸민 난대양치식물원 등 실내 관람시설도 눈길을 끈다. 특히 지상 2층 규모의 산림전시관에는 수목원의 사계를 주제로 한 사진전 등 기획전시와 다양한 상설 전시가 연중 열리고 있다. 수목원 꼭대기의 나무로 만든 전망대에 오르면 짙푸른 수목원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물향기수목원 소나무길
▲ 물향기수목원 숲 속 쉼터

 

수목원은 천천히 둘러보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로 규모가 제법 크다.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1,600여 종에 이른다. 수목원 안에는 환경보호를 위해 매점이나 식당이 없지만 준비해 간 도시락 등을 숲속쉼터에서 먹을 수 있다. 
수목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11월까지 운영하는 해설프로그램을 이용(매주 화요일~일요일, 1일 2회)하면 된다. 신청은 일주일 전에 홈페이지(mulhyanggi.gg.go.kr, 031-378-1261)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참가비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입장 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 입장료는 어른 1,500원, 어린이 700원이다. 

☛추천 맛집: 시내 오산동에 있는 두꺼비 숯불생고기(031-375-7753)는 간장이 아닌 마늘로 본래 맛 살린 생갈비 맛이 좋다. 착한식당으로 소문이 자자한 우시장할매집(궐리사로 59번길 31-7, 031-374-3028)의 소머리국밥과 우거지해장국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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