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는다. 길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전하고 발길은 아득한 시간을 걷는다.

아라메길은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길이다. ‘아라메’는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트레킹코스로 만들었다. 문화와 역사가 자연과 만나는 길이다. 

아라메길은 코스가 구분돼 있지만 시작과 끝이 없는 길이다. 발걸음이 처음 가는 곳이 시작점이고 멈추는 그곳이 종점이다. 아라메길은 걸어도 좋고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차로 이동하며 구간의 정취를 바라봐도 좋다. 
운산면에는 문화와 역사가 자연과 함께 공존한다. 용현계곡, 마애여래삼존불상, 보원사지, 개심사로 이어지는 길은 불교문화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유기방 가옥과 낮은 산이 물에 잠긴 고풍저수지의 물빛을 따라 용현계곡으로 접어들면 용현2리 강당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미륵불을 만난다. 
미륵불은 강댕이로 진입하는 입구에 세워져 있어 강댕이미륵불로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에 세웠다고도 하며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 이었다고도 한다. 

용현자연휴양림이 있는 용현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길에서는 상쾌하고 맑은 공기가 도보객의 피로를 풀어준다.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어탕국수집 맞은편으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물길 건너 보인다. 
‘백제인의 미소’라는 국보 제84호 마애여래삼존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달라져 빛과의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인근의 예산 화정리 석조사방불상과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봐 서산, 예산, 태안 지역은 백제 시대 지방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물길을 따라 방선암을 지나 용현자연휴양림으로 가다 보면 보원사지에 이른다. 
보원사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창건연대와 폐사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서산마애삼존불과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백제 때 창건돼 조선까지 1000년 이상 유지되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큰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행사기를 다는 당간을 세우기 위해 만든 화강석의 당간지주 사이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 초기의 석탑양식을 고루 갖춘 5층 석탑과 통돌을 장방형으로 만든 석조, 고려시대에 법인국사의 제자들이 그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만든 보승탑,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가 보인다. 

꽃잎으로 마음이 열리니

아라메길을 알리는 산길 초입의 장승에서 보원사지의 규모를 짐작하면서 그 길로 아득한 시간의 흐름들이 이어짐을 느껴본다. 산길을 따라 개심사로 향한다. 보원사지 초입에서 개심사까지의 거리는 1.9㎞로 걸음품을 팔면 1시간 내로 도착한다. 오르막으로 시작하는 산길에는 소나무와 철쭉나무가 오르막의 공간을 그늘로 채워준다. 20여 분 오르막의 끝 지점은 편안한 능선 길로 새소리와 바람이 나뭇잎을 살며시 흔드는 미풍과 부드러운 임도길은 맨발로 걸어도 좋을 듯하다. 내내 걸어도 발걸음이 가벼워질 길이다. 
이 구간은 서산 아라메길 1구간이기도 하지만 내포문화숲길 원효깨달음의 테마 길로 용현계곡 입구에서 개심사로 이어지는 3코스기도 하다. 
내포문화숲길은 가야산 주변의 4개 시·군(서산시·당진시·홍성군·예산군)의 내포지역에 남아 있는 많은 불교성지들과 천주교 성지, 역사인물 및 문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지점들을 옛길과 마을길, 숲길과 임도, 들길, 하천길을 따라서 연결한 충청남도 최대의 장거리 도보 트레일로서 약 320㎞의 길로 연결돼 있다. 
임도는 용현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며 일락산(521.4m)으로 가는 산행길이기도 하다. 2005년 개장한 국립용현자연휴양림은 해발 678m의 가야산 줄기인 석문봉과 옥양봉, 일락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맑고 깨끗한 용현계곡을 품고 있어 산림휴양의 적지로 손꼽힌다. 중간에 개심사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철쭉꽃 길을 내려가면 산신각을 지나 개심사에 이른다. 개심사는 그리 크지 않은 절로 아름답고 운치가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개심사는 서산의 4대사찰이다.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아늑하고 기품이 있는 절이다. 봄이면 자두나무와 벚꽃이 피고 이어서 늦은 봄 다시 겹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절집은 온통 꽃 속에 묻힌다. 꽃그늘 속으로 사람들이 꽃송이 수만큼 찾기도 하니 여심을 뒤흔드는 봄날의 개심사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영주 부석사, 청도 운문사와 더불어 가장 사랑스러운 절집으로 개심사를 꼽으며 “봄철 벚꽃이 대단하다. 그러나 종루 한쪽에 서 있는 늠름한 늙은 매화의 기품을 벚꽃은 감히 넘보지 못한다”고 했다. 벚꽃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꽃이다. 벚꽃으로 들뜬 마음을 자연스러운 목재들이 어우러진 심검당의 꾸밈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정화하니 개심사에서는 화사하고 평온한 마음을 얻는다. 
개심사는 옥색의 겹벚꽃이 피는 절로도 유명하다. 겹벚꽃(Prunus donarium)은 산벚나무를 개량한 것으로 꽃잎이 겹으로 돼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백색, 연분홍, 진분홍, 옥색, 적색 등 5가지 색을 띤다. 그것 말고도 절 앞에 연못 주변의 배롱나무 연분홍 꽃이 피는 계절이면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꽃잎들이 연못 위에 떨어져 연못이 화사하게 물들어 간다. ‘개심(開心)’은 마음을 열어 깨달음을 얻으라는 의미다. 꽃잎이 열리듯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살며시 열어볼 개심사의 풍경들이다.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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