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모 
서울 노원 불암대림아파트
도서출판SUN 대표


나는 딸네와 같이 산다. 아들딸 모두 결혼시키고 달랑 우리 부부만 남게 되자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결혼하자마자 외국에 나가 살던 딸이 아기를 낳은 후 귀국했을 때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흔쾌히 동의한 덕분에 날마다 손주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가 늘 손주에게 당부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인사하는 것이다. 아파트 입구나 복도에서 누구를 만나든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법을 일러줬다. 아니, 우리 가족이 먼저 그렇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인지 손주는 인사를 참 잘한다. 이제 12살이 됐는데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든 미화원 아주머니든 만나기만 하면 꾸벅 인사하는 바람에 칭찬도 자주 듣는다. 인사뿐 아니라 음식도 잘 나눈다. 빵을 사올 땐 경비실에 두어 개 놓고 오기도 하고, 제 어미가 부침개를 부치면 한 접시 가져다 놓고 오기도 한다. 경비실에 누가 있건 없건 그냥 놔두고 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몹시 더운 날이었다. 집에 들어온 아이가 싱글벙글이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경비원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주셨단다. 일부러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아이가 기특해 보였나 보다. 그 후로 가끔씩 색연필도 얻어 오고 물도 얻어 마신다. 그러면서 제 친구들에게 말끝마다 “경비원 아저씨에게 인사를 잘했더니 아이스크림도 주셨다!”하고 자랑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지금쯤 인사를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갈수록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삭막한 아파트 문화 속에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인사’가 아닐까? 같은 라인에 살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만나면 모르는 척 외면하는 서먹한 이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면 처음엔 목례만 하다가도 다음엔 좀 더 따뜻한 말이 오가지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집 앞을 청소하는 미화원 아주머니는 아마 인사하는 우리 손주를 보고 싶어 그리도 열심히 청소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인 중에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있다. 그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인사를 잘해서 성공한 것이라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학비가 없어 낮에는 일하고, 야간 고등학교에 겨우 다닐 정도로 힘들었는데 만나는 사람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더니 일이 차츰 늘어나고, 기회도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평생 습관이 돼 그는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한다.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신뢰가 가고 인상도 좋아 보인다. 
인사는 습관이다. 인사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한다. 에티켓의 기본인 인사는 사람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또한 인사는 서로를 인정하게 한다. 경비원 아저씨나 미화원 아주머니를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한다. 인사하는 법만 잘 가르쳐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학교에 가는 손주가 이웃집 아저씨를 만났는지 인사하는 소리가 집에까지 들린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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