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계절의 여왕 5월이 가고 있다. 이제 한 달 후면 2019년의 절반이 사라진다.
아직도 ‘황금돼지띠 기해년 새해’란 말이 생생한데, 이제 곧 ‘쥐띠, 경자년 새해’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학생 땐 1년 365일이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더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나니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가는지. 입을 꼬물거리며 알듯 말듯 한 옹알이로 엄마 아빠를 한없이 궁금하게 만들던 아이는 어느덧 덩치가 부모만 해졌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거나 야속함을 느낄 마음의 여유조차 사치스럽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새해를 시작하자마자 정말로 반이 지나갔다. 원래 말의 뜻은 그런 의미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아직 ‘새해’의 절반 이상 남아 있으니 늦었다 낙담 말고 부지런히 뛰어야겠다. 그래도 아직은 ‘봄’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계절의 여왕’이란 호칭이 지금도 잘 어울리는 것인지 의문이다. 원래 5월은 어느 달보다 아름다웠다. 온갖 꽃들이 흐드러져 세상이 온통 노랑과 핑크빛이었다. 그뿐이랴. 집 밖을 나서거나 창문을 열기만 해도 코 끝을 간질이는 아카시아꽃 향기는 그 어느 향수보다 감미롭고 뇌쇄적이었다. 어느 시인은 아카시아 꽃잎을 ‘여인의 속살’이라 했고, 다른 시인은 “그녀의 그리움이 / 꽃잎에 그대로 묻어 있다”며 “하얀 얼굴로 / 하얀 향기로 발길을 멈추게 하고는 / 그리움을 안겨주는 사랑의 꽃”이라 노래했다. 천연색 세상에 퍼지는 순백의 향기는 반드시 5월이라야만 펼쳐지는 천상의 화원이었다. 그때 하늘은 진짜 ‘하늘색’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5월이 아니다. 꽃은 이미 4월에 절정의 환희가 지났고, 아카시아 향기는 기억에만 아련히 남아 있을 뿐, 아까시라는 본명을 되찾은 후 서서히 사라져갔다. 하늘색 아닌 날들이 더 많아졌다. 5월의 도시 광주엔 일찌감치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며 기상특보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제 더운 지역의 상징은 대구만이 아니다. 달이 바뀌면 곧 온 나라가 펄펄 끓을 것이다. ‘대프리카’의 ‘대’는 대구의 ‘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다.
봄이 사라지고 있단 얘기는 한참 전에 나왔지만,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우리의 봄날은 LTE를 넘어 5G급으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들에게 봄의 색깔과, 봄의 공기와, 봄의 하늘을 물려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봄날, 계절의 여왕을 파괴한 건 인간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지구를 갉아먹으면서 한편으론 후손과 지구의 앞날을 걱정한다. 인류와 지구의 ‘웃픈’역설이다.
병색이 짙어가는 지구를 맨몸으로 견뎌야 하는 건 아이들의 몫이다. 결국 그 아이들이 나섰다. 스웨덴의 16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등교거부운동은 유럽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년주축 운동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각국 정부와 유럽연합에 행동을 촉구하며 여러 투쟁을 전개 중이다.
그레타는 “선생님은 당장 기후를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인류가 조만간 파국에 빠진다고 했는데, 정치인들은 4년, 8년 전에도 많은 얘기를 했지만 계속 나빠지기만 한다”며 “제발 우리 미래를 망치지 말라”고 외친다. 그러나 어른들은 지금도 공해물질을 배설 중이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경비실의 냉난방기 설치율이 64%라고 한다. 숫자보다 놀라운 건 부자동네의 설치율이 훨씬 낮다는 사실이다. 날씨는 한없이 길어지고, 끝없이 뜨거워지는데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의 비지땀과 고통은 보이지 않는가. 찜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지구환경을 위해 에어컨을 사용하지 말라’는 궤변을 늘어놓을 사람은 설마 없겠지.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지구를 살려야 한다.
정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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