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격제도는 저마다 만들어진 이유와 배경이 있고, 제각각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변호사나 의사 자격처럼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로 대우받는 자격부터,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공인중개사나 사회복지사 자격, 그리고 검량사나 검수사처럼 이름만 들어선 이해하기도 어려운 특이한 자격들도 있다.
참고로 검수사는 ‘선적화물 개수의 계산 또는 인도·인수를 증명하는 검수에 종사하는 자격자’를 일컫는 것이고, 검량사는 ‘액체화물, 곡물, 기체화물 기타 각종 저장탱크와 화물의 용적 또는 중량을 산정·검측·계산해 공증적 증명을 행하는 자격자’를 말한다. 쉽게 말해 이 두 자격은 양을 헤아리기 어려운 물건을 사고팔 때 그 물건의 양적가치를 산술적으로 측정해서 증명해주는 직업이라 하겠다. 물론 이들 모두 국가전문자격이다.
여러 국가전문자격들 중 어느 자격 못지않게 인기가 있으면서도 그다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특이한 자격이 ‘주택관리사’ 자격이다.
인기 자격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매년 응시자가 최소 1만명을 훨씬 상회한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지난해 치러진 제21회 주택관리사보 시험에도 1만 7,717명이 응시해 이 중 762명이 최종 합격했다. 합격률 4.3%의 경이적인 경쟁률을 자랑한다. 100명이 응시해서 5명도 채 붙기 어려운 시험이니, 여기에 합격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1990년 1회 시험부터 지난해까지 응시자가 연인원 46만여 명, 배출된 합격자만 5만4,500여 명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중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하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상당수의 입주민들은 아직도 관리소장은 회사를 퇴직한 중장년 아저씨가 하는 일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자격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관리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그리 높지 않다 보니 시험준비를 하면서도 합격할 때까진 주변에 알리는 걸 꺼려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관리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면 모든 게 다 관리사무소장과 주민대표의 비리인 양 오도되는 경우가 흔했다. 특히 관리사무소의 사소한 실수나 오류를 과대포장하는 건 언론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경찰과 검찰 등 국가기관과 감사기관의 상습적이고 자기과시적이며, 성과주의에 빠진 못된 버릇이었다. 1원 한 푼 착복하지 않고도 비리횡령범으로 몰리는 수모를 많은 관리사무소장들이 당해왔다.
결국 인지도와 이미지가 별로 높지 않은 이유는 중장년층만 응시한다는 고정관념과 공동주택 관리업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 화학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점점 ‘옛 이야기’가 돼 가고 있는 듯하다. 많은 주택관리사들이 관리업무의 실상을 주민들에게 낱낱이 공개하고,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언론과 정부기관 등을 상대로 날조된 부분을 적극 바로잡아주면서 입주민과 일반 국민들의 ‘따가웠던’ 시선이 ‘따뜻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주민의 당연한 권리행사로 생각했던 행동이 사실은 부당한 갑질이었고, 과도한 폭력적 언행이 관리직원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란 걸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 가고 있다.
관리직원이 하인이나 종놈이 아니라 내 가족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조금씩 퍼져나가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전체 입주민에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깨달음이 확산되고 있다.
모든 관리종사자에게 좋은 직업환경을 제공하는 최고의 방법이 주택관리사법 제정이다. 국회에서도 이를 위한 토론회가 시작됐다. <관련기사 1·5면>
자격제도의 명칭이 그렇다 보니 법안 이름이 주택관리사법일 뿐, 실제론 전체 관리종사자를 위한 법이다. 요즘 관리업무의 가장 큰 난제로 부각되고 있는 부당간섭과 부당지시 등 갑질근절 규정을 명문화하고 관리사무소 직제와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주택관리사만이 아닌 전 직원에게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주는 지름길이고, 이는 곧 입주민에게 더 큰 이익으로 귀결되는 선순환이 구축될 것이다.
주택관리사법은 누구를 위해 제정해야 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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