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내 집, 대지는 남의 땅?

심층취재 |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아파트의 불편한 진실① 이경석 편집국장l승인2019.04.03 15:35:29l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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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이 먼저인가, 사용권이 먼저인가?
처음 건축 당시엔 모두 임대아파트였다가 중간에 일부 가구가 분양 전환되면서 마찰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아파트가 있다. 양쪽 토지에 대한 소유권과 재산권의 기준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 일부가 분양 전환된 후, ‘분양 입주자와 임대 입주민’ 간, ‘분양 단지와 LH’ 간에 벌어진 다층적 갈등으로 인해 매매와 재건축 등에 혼선이 생기고 단지 내의 시설물들이 황무지처럼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시 서구 A아파트는 ‘주택 200만호 공급’ 광풍이 불던 지난 1991년 사업승인을 받아 1993년 6월 사용검사 후 입주가 시작됐다. 총 3개 단지로 조성된 이 아파트는 1단지 1,491가구, 2단지 1,130가구, 3단지 1,403가구 등 도합 4,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1단지와 3단지는 영구임대(2,894가구) 용도로 지어져 지금도 임대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나, 2단지(1,130가구) 10개동 중 4개동은 근로자복지주택으로 분양하고 나머지 6개동은 5년 임대기간이 끝난 후인 1998년에 분양이 완료됐다.
문제의 발단은 그때부터였지만, 당시엔 입주자들이 분양받은 기쁨에 들떠 있던 때여서 토지소유권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피분양자의 소유권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입주자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매매 또는 전월세나 대출 등을 위해 토지대장을 발급받아 확인해 보니 아파트 대지 소유권이 현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로 돼 있는 것. 그것도 단지별 구분 없이 3개 단지가 합쳐진 9만3,226.3㎡ 전체 토지면적의 소유자가 건축 당시부터 현재까지 아무런 변동사항 없이 LH(전 대한주택공사)로 돼 있는 것이다.
관리사무소 도움을 받아 한 가구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본 결과 소유자 대지권의 비율 역시 분양단지 면적이 아닌 임대단지까지 포함된 전체 ‘93.226.3분의 000’으로 표시돼 있었다.
이로 인한 문제점들은 생각보다 꽤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사를 위해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으면 처음엔 매입 의향을 보였던 사람들이 “대지면적에 임대아파트 단지의 면적까지 포함돼 있는 게 왠지 찜찜하다”며 구입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있어 매매에 제약이 생길 뿐만 아니라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은 기본이었다. 
아파트가 점차 노후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사업을 결정할 경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입주자도 있었다. 임대단지를 제외한 분양단지만의 재개발이 가능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재개발이 현실화될 경우 소유권이 없는 임대단지 입주민들과의 극심한 분쟁이 불을 보듯 뻔하고, LH의 현 태도로 볼 때 대지권 분할 등 협조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는 얘기다.
매매나 재건축처럼 커다란 사안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곤란을 겪는 문제점들은 더욱 다양하다. 2단지와 맞닿은 1단지 방향과 3단지 방향엔 족구장과 테니스장이 들어서 있다. 이 중 족구장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꽤 오래된 듯 바닥에 잡초가 무성하고, 담장을 비롯한 시설물도 낡아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테니스장은 입주민과 별 연관이 없는 동호회가 사용하며 잠금장치까지 걸어 둔 상태였다. LH는 땅을 분할하지도 않으면서 직접 나서서 노후 시설들을 관리하거나 개보수할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 의견을 수렴해 주차장으로 활용할 계획도 세워봤지만, LH 명의로 돼 있는 대지소유권 문제로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유권을 갖지 못한 분양 입주자들이 자비로 고칠 수도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시설물들이 그렇게 황폐화돼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단지와 3단지 사이에 낀 2단지는 진입로가 모두 양 단지와 겹쳐져 있어 외부차량 단속을 위한 차단기 설치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주차난은 물론 보안에도 취약한 상태. 관리사무소 역시 여러 가지 민원으로 인해 본연의 관리업무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처지라고 하소연한다.
이 아파트 입대의는 대지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난 2005년, LH에 토지분할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고, 지난해에도 “25년간 재산권을 침해당해 왔다”며 국민신문고 청원까지 올렸으나, LH는 “건설 당시 정부의 소셜믹스(주택단지 내 다양한 사회계층이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사회통합정책의 하나)방식으로 개발됐으며, 1·2·3단지가 통합단지로 사업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별도의 지번으로 분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이에 2단지 입주자들은 “이미 분양전환이 이뤄져 주인이 명백하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분할해 줄 수 없다는 건 정부기관이나 마찬가지인 공기업이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수십 년간 지속돼 온 분쟁은 복잡한 속사정만큼이나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할 수 있다. ‘LH의 수퍼갑질’로 볼 수도 있고, ‘분양단지의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다. 또 다른 차원에서 최초 사업구상 당시 혼합단지를 만든 정부정책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이었거나,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소유권과 재산권 분란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문제점은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비록 극소수 단지에 한정된 문제지만 아파트엔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들이 많이 숨어 있다.
 

 

이경석 편집국장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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