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신학기가 시작되고 학동기의 아이들을 둔 가정에서는 긴장이 보인다. 짝꿍이나 담임 선생님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할 것이고, 임원 선거가 이어질 것이며, 아이와 부모의 욕구가 부딪치는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유치원에 가야 할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유치원 문제로 사회적 어려움에 직면해 힘들 것이나 이 또한 세월이 지난 다음에 보면 아이들이 사는 세대를 관통하는 어려움의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봄의 전령사, 서울의 매화를 보러 봉은사로 가려고 해도 미세먼지가 훼방을 놓는다. 모든 생활을 신선하게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래저래 다양한 걸림돌이 보인다. 인생 자체가 어차피 허들게임이다. 넘을 만큼의 장애물이므로 서둘지 말고 허망한 욕망만 갖지 않는다면 속도는 기량의 문제다. 넘어지라고 만들어 놓은 경기가 아니므로 무난히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바삐 달려도 기본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거늘 직장맘들의 고충은 도처에서 바람의 소리를 낸다. 엄마가 바쁘면 집안 사람 모두가 부산스럽고 다소 바쁘다. 그 바쁨을 해결해주는 요소 중 하나가 현대사회의 사업 중심에 자리 잡은 택배문화다. 아파트마다 택배 보관소가 설치되기도 하고 대문 앞에는 배달된 물건이 주인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말 배우는 아이가 가장 먼저 익히는 단어가 ‘택배’라고 하는 기사도 만나게 된다. 하기사 유치원 다니는 손녀가 어버이날 카드에 적은 문구도 ‘택배가 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즈음 내가 택배 받는 일을 즐긴다. 내 돈 내고 받는 물건인데 상자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선물이 온듯 신이 난다. 갯수가 많을수록 상자를 열기 전 기대감은 커진다. 
게다가 이름이 낯설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누가, 무엇을? 하면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물건을 보고 사는 것과 달리 이왕이면 기대 이상이기를 꿈꾼다. 부치는 사람과 배달자가 다르듯이 우리네 영적 세계에도 배달꾼이 있다. 모두에게 함께 사는 수호천사는 기도를 배달한다.  
어느 날 이유 없이 평안하고 행복감이 크다면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나에게 영적 선물을 날라다 준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기도 택배를 보내면서부터 믿게 됐다. 내가 누군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기도 중에 이름을 들먹이기도 하고, 단체를 들먹이기도 하면서 축복기도를 개별적으로 부친다. 복을 얹어 부치면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은 그 기도를 받아 자기 삶을 기름지게 만들며 살 것이다. 마치 통장에 무통장 입금해주면, 그 돈으로 풍성하게 삶을 꾸리듯 기도를 그렇게 사용할 것이다.  내가 택배를 즐기듯 기도를 받아 즐겨 사는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소속한 단체나 활동하는 가상공간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택배를 부친다. 누군가 아파하는 내용이 올라오면 허락 없이 기도를 속달로 부친다. 그런 것 받지 않는다고 마음을 닫았을 경우에는 내게 되돌아 올 것이므로 발송자가 수취인을 겸하는 사업이다. 이미 마음이 열려있고 나눔 활동을 하기에 기도를 앞세운다. 모임에서 밥이라도 한 끼 나누고 나면 사는 게 원만하듯  기도를 앞세우면  건강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오늘도 새벽 잠이 깨 나는 묵주를 들었다. 대형 기도 꾸러미를 수호천사의 등에 얹었다. 내 영적 택배 창고는 그래서 큰 편이다. 때로는 자가생산해 보내기도 하고 주문을 받아 운영하기도 한다.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 난다는 말을 믿고 긍정의 기원을 담아 보낸다. 영적택배는 받는 사람만 정확하면 모두 공짜다. 그래서 인심을 팍팍 쓴다. 받지 않으면 되돌아와 나의 마음에서 향내를 풍길 것이니 손해 볼 것이 없는 사업이다. 기도택배 작업을 마친 마음 창고에는 향내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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