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혼밥, 혼술에 이어 독신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배려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택배 보관소가 따로 마련된 아파트가 있고 독신을 위한 사목을 생각해보는 성직자도 있다.  
나의 삶에서 92세 어머니가 홀몸노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도 그다지 귀에 곱지는 않다. 어머니의 상황이 공동생활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데다 원하지 않아 아직은 자식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살피지만 아직 혼자라는 개념이 어머니의 일이지 바로 내 일처럼 실감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잠시만 눈을 돌려보면 이웃에 배우자를 보내고 혼자 사는 사람이 상당수다. 그들의 고충을 종종 말로 듣기는 하지만 어쩌다 혼자가 돼 보는 나로서 아직도 이해가 먼 삶의 개념이다. 
행여 혼자라는 것이 알려질까봐 현관에 남자 구두를 놓고 산다는 선배, 돈이 많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늘 지나칠 만큼 소박함을 보이고 살았다는 어려운 고백을 하는 후배도 만난다. 그런가 하면 공부를 하면서 신림동으로 들어갔던 딸 아이는 한여름에도 커튼을 다 내리고 진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섬세하게 듣지 않아서지 소소한 일상을 펼쳐놓은 글을 만나니 한 번쯤 귀를 모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혼자일 수도 있고 기혼자로 살다가 혼자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취를 하는 학생도 혼자일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홀몸노인 외에 독신의 삶에 대해 어려움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60대의 어느 여인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나는 어려움을 실감했다.  
그녀가 겪는 일상의 시시콜콜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혼자 산다는 것 때문에 들어야 하는 ‘아무말 잔치’는 실로 방대하다. 젊은이들에게 왜 결혼을 안하냐고 묻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혼자 살면서 뭔 쓰레기가 그리 많아요?” 과일박스나 재활용품을 들고 나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이 묻는 말이다. 
자녀가 다녀갈 수도 있고 친인척이 다녀 가면서 쓰레기가 생겼을 수도 있는데 나쁜 생각을 품고 한 말은 아니지만 ‘혼자’를 앞세워 너무나 자주 말을 듣다 보면 신경이 거슬린다. 행사를 마치고 치맥파티를 하는 중에 술도 좋아하지 않고 어두울 때 집에 가기가 싫어서 슬그머니 일어나니 “혼자 살면서 왜 벌써 일어나느냐”고 묻는다. 된장과 고추장을 담갔다고 하니 “혼자 살면서 장도 담그냐”고 묻는다.  
지인과 오랜만에 마트에 장보러 가서 공산품, 식품, 채소 등 고루 담으니 “혼자 살면서 별걸 다 산다”는 말을 한다. “내일은 뭘 해 먹을까”라고 하니 “혼자 살면서 뭘 걱정하느냐”고 하고, 김장 배추 20㎏을 샀더니 “혼자 살면서 김장도 하느냐”고 묻는다. 말하자면 사다 먹지 뭐하러 김장은 하고 그러냐는 핀잔이 깔려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하니 “늦잠 자지 혼자 살면서 왜 일찍 일어나느냐”고 묻는다. 아마도 내가 알고 지내는 선배의 일상을 만나면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뒤로 나가 자빠질 것 같다. 
혼자 산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여인이다. 집은 곱게 정리해두고 식사는 고루  균형잡힌 식단으로 종종 포도주 한 잔도 곁들인다. 사철 음식을 고루 갈무리해 두고 입맛 당기는 대로 먹고 살며, 일 년에 한 차례 미국에 사는 두 딸네 집에 다녀오며 유명 전시장으로, 타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미국에서도 주문해 배달하니 어려움이 없다. 그래도 혼자라는 말에는 늘 조심이 따른다. 이 세상에서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유령처럼 살 수는 없는 일,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보호 차원의 결속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프라이버시를 침해 당하지 않고 이웃과 섞이는 문화는 언제나 정착될까. 악의 없는 말일지라도 수시로 듣게 된다면 섞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60대 그녀는 말한다. 
“혼자 살면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살아야 되나보다…. 그런데 참 슬프다. 아직 이런 말들에 단련이 안 되서 혼자 상처받고 혼자 우울해하고 사람 만나는 게 겁이 나 모임도 모두 그만 두고 혼자 노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
우리나라의 인구 중 독신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판국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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