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⑧ 민원을 건설적 자극제로 보자

기 고 김호열l승인2019.03.06 14:05:58l1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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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호 열  주택관리사
인천 산곡한양7차아파트 관리사무소장

관리사무소장으로 여러 해 근무를 하다가 이 업계를 아예 떠난다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아파트 입주민에게 이렇게 작별인사를 한다. 
“당신들, 아파트 사는 것이 절대 벼슬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행태로 관리직원 위에 군림하려는 입주민들에게 그는 정신적으로 많은 시달림을 당했을 것이다. 관리사무소 종사자라면 모두 공감하는 사항이며 이런 것이 근무 중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입주민 의식이 잘못됐으니 더 이상 소장을 못하겠다고 한다면 정말 그만 두는 것이 맞다. 지금 우리가 종사하는 관리소장이란 직업은 우리가 어쨌든 선택한 것이니 이런 것을 알고 있더라도 이를 탓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근무하는 관리사무소는 소중한 직장이다. 관리사무소의 존재는 근로의 기회를 제공하고 또 풍족치 않더라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급여를 지급한다.
소중한 직장은 우리 스스로 소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관리사무소 직원 위에 군림하려는 일부 입주민들의 비뚤어진 행태가 성스러운 관리사무소의 공간을 훼손해서야 되겠는가?
필자가 이야기하는 관리사무소의 공간이란 삼차원적인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사차원적인 정신적 공간까지도 포함한다.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또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관리사무소의 공간을 소중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입주민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나를 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이 주는 위협적인 상황이나 이해가 불가능한 논리의 주장과 요구에 대해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불쾌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건설적인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사례를 보며 생각해 보자. 
사례1. 정전 민원 
정전이 되자 당장 관리사무소로 전화해 김치냉장고 김치 맛 버린다고 욕하고, 또 컴퓨터 작업하다가 파일이 날아갔다고 욕부터 한다. 
정전의 원인이 관리상의 부주의나 실수로 인한 것이었다면 당연히 사과하고 피해보상까지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정전의 원인은 한전 공급선로상의 문제였으며 관리사무소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주민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관리사무소에 욕부터 했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음식이 상하고, 공들여 작업 중이던 컴퓨터 자료가 사라졌으니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화난 입주민은 흥분해 이성을 잃으며 화를 낼 상대를 즉시 찾는다. 그 상대는 관리사무소밖에 없다. 
관리사무소로 전화해 급팽창한 화를 분출하고 일차적으로 분노의 기운을 진정시킨다. 영문도 모르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첫째, 화난 입주민은 화풀이할 상대를 정확히 모르고 한 것이며 만약 처음부터 한전 측의 잘못이었음을 알았다면 한전 측에 화를 냈을 것이다. 
둘째, 입주민이 화가 난 것은 정당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니 그 심정을 이해해주고 유연하게 화풀이를 들어주면서 입주민 편에 서야 한다. 
셋째, 관리사무소는 입주민과 한 배를 탄 우리 편이며, 관리사무소는 입주민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입주민의 화는 관리사무소를 공격하기 위해서 내는 것이 아니다. 
정전사고는 입주민에게 위기를 느끼게 하며 이것은 두려움과 공포를 유발하고, 결국 분노가 올라온다. 
급팽창한 한순간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분출구가 필요했고 그 대상을 관리사무소로 한 것뿐이다. 이런 상황의 입주민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입주민의 화는 한쪽 귀로 들어왔다 다른 쪽 귀로 흘러나가게 된다. 우리의 소중한 공간을 훼손할 일이 전혀 없다. 
☞다음 호에 계속
사례2. 주차난 민원 
많은 주민 차량 수에 비해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주차문제로 민원전화가 관리소장 개인 전화로 자정이나 새벽에도 온다. 민원전화가 자정·새벽에도 오게 한다는 것은 일단 이해하기 어렵다. 민원인이야 당연히 시도 때도 없이 물불 안 가리고 전화를 할 수 있다지만 퇴근 후에도 전화 오게 하는 것은 적절한 민원처리절차를 만들어 놓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 생각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주차장의 주차대수가 턱없이 부족하니 주차민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내 주차 공간 확대 방안, 2차량 이상 주차요금 징수액의 인상, 관할구청에 주차난 해결을 위한 인근 도로 주차공간 활용 건의, 기타 주차난 해결을 위한 여러 방안을 다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주차난 문제는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관리소장이 할 바를 다 했는데도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은 대통령이 와서도 해결하지 못할 것 아닌가! 
관리소장이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자신의 다리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된다. 
다리가 없어 불편하고,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자괴감이 생기고 장애자로서 평생 타인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아가며 살아간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정신적으로 괴롭겠는가! 
주차난으로 인한 파생문제로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각종 민원에 의한 괴로움은 사고로 장애자가 된 사람의 괴로움 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당연히 주차문제는 없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당연히 어느 아파트나 주차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현실을 쉽게 못 받아들이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도 때도 없이 주차문제로 주민이 전화하는 경우가 있다면 우선 민원처리기준 및 절차를 마련하여 관리소장이 없더라고 당직 직원이 처리할 수 있게 만들고 관리소장이 직접 퇴근 후 전화 받을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며, 언제나 발생하는 주차문제는 그러려니 하고 겸허히 수용하여 처리할 수밖에 없다. 현 주차문제를 속 태우며 고민하고 비관하며 민원인을 비난하여봤자 나만 스트레스가 쌓이고 건강을 해치게 된다. 
사례3. 세대 민원 
내가 내는 관리비로 월급 받으니 세대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다 해달라고 한다. 관리소 직원이 주민이 내는 관리비로 월급 받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대에서 요구하는 모든 일을 당연히 해주어야한다는 주민의 주장은 잘못 되었다.
관리소의 직원은 분명 공용부분을 관리하기 위하여 채용된 직원이며 개인 세대의 일은 관리소의 책임 범위가 아니다. 
사실 일반 주민들은 공용부분의 중요성을 모른다. 여기에는 내 것은 귀하고 남의 것은 하찮게 여기는 이기주의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공용부분은 내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소중하게 여길 줄도 모른다. 일부 그렇지 않은 세대도 꽤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공중도덕 준수 수준은 선진국에 많이 뒤져 있다고 본다. 자기 것밖에 모르면서 내가 월급 주니 당연히 주인이 시키는 대로 다해야 하지 않느냐며 진실과 모순된 주장을 할 때 관리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인은 주인과 대적할 수 없다. 입주자와 관리소가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아니지만 사용자와 고용자의 형태를 취하는 구도에서 동등한 입장으로 민원인에게 세대 전유부분은 관리 의무 범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간단하고 쉽게 처리해줄 수 있는 세대민원은 확실히 주민을 위한 차원에서 협조하여 주는 것이 옳다. 그러나 무리한 요구사항은 지혜롭게 거절해야 한다.  ‘난 못하니까 알아서 하세요.’가 아니라 ‘이것까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사양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럼 이제 우리의 마음자세는 어때야 할까?
입주민이 아무리 얄밉게 굴어도 ‘이기적인 인간이 뭘 모르고 저러는군. 그래도 그건 아니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정중히 거절해야 한다. 
결과야 어떻게 되건 우리를 미워할 주민이 하나 더 늘어날수록 불리한 건 우리 자신이며 괴롭고 힘든 것도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우리의 무덤을 팔 이유는 없다. 

김호열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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