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관리사의 존재이유

한국아파트신문사l승인2019.03.13 11:19:28l1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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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관리의 역사는 크게 둘로 나뉜다. 주택관리사 제도 도입 ‘전’과 ‘후’로.
1990년 제1회 주택관리사(보) 시험이 치러지고 2,348명의 첫 번째 합격자가 탄생한 이래, 지난해 치러진 21회 시험까지 모두 5만4,500여 명의 주택관리사가 배출됐다. 누적 응시자 수가 무려 45만명이 넘을 정도로 중장년층의 인기 자격증으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대까지의 공동주택은 짓는 일에만 급급했을 뿐, 관리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입주민도 그랬고, 정부나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관리비 고지서를 받으면 입금만 할 뿐, 그 내역의 적확성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어떤 공사가 벌어져도 필요하니 하나보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파트가 비리의 온상이 돼 있었다. ‘한번 주민대표는 영원한 주민대표’가 돼 단지의 왕으로 군림하며, 비판적 입주민을 왕따시키거나 관리직원 채용과 해고, 공사·용역업체 선정에 관해 전권을 휘둘렀고, 여기에 한술 더 떠 “부녀회장 몇 년 하면 집이 한 채”라는 농반진반의 풍문이 떠돌았다. 직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소장이 공사비를 부풀리거나, 업자들로부터 리베이트 챙기는 게 관행처럼 여겨졌고, 관리비를 몽땅 털어 도주하는 경리직원도 있었다. 주택관리업자 역시 회사의 영리추구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했던 1980년대 중후반, 아파트 관리비리가 사회적 골칫덩어리로 급부상했다.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관리제도의 본격 도입과 업무체계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핵심은 ‘주택관리사’였다. 1987년 주택건설촉진법이 개정되면서 주택관리사 제도가 공식 도입됐고, 1989년 공동주택관리령에 의해 시행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제도가 마련됐다고 해서 아파트가 한순간에 정화될 리는 없었다. 그만큼 기득권의 저항이 거셌다. 지금도 공동주택 관리 체계가 제대로 정착했다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제도들을 싫어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택관리사를 관리사무소장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자격자만을 위한 제도기 때문에 불필요한 규제라도 주장한다. 언어도단이자 완벽한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주택관리사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입주민의 재산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지, 자격자들에게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격자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모습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제도적으로 미비해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까지 주택관리사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체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관리현장도, 종사자도, 정부도, 지자체도, 관련단체와 업체들도 체감속도만 다를 뿐,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언론만큼은 이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지난주 한 일간지에 ‘모 아파트의 전직 관리소장이 4년간 관리비 2억6,000만원 빼돌려 구속됐다’는 기사가 보도됐다.(관련기사 2면) 관리종사자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 체제에서 장기간에 걸쳐 수억대의 관리비를 횡령한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그 정도로 무력하지 않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진상을 파악해 보니 해당 아파트는 주택관리사를 배치하지 않아도 되는 소규모 아파트였다. 언론은 아직도 주택관리사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소장은 다 같은 자격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언론들은 종종 사실만 알릴뿐, 진실엔 무관심하다.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사실)가 되지만, 식민지 수탈의 원흉을 처단하면 독립투사(진실)가 된다.
평생의 직업을 삼기 위해 어렵게 취득한 자격증을 고작(?) 2억~3억원에 팔아먹고 감옥까지 갈 바보는 없다. 이게 자격제도가 도입된 이유고, 필요한 이유고, 유지되는 이유다. 입주민의 이익을 위해선 자격제도가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고, 굳건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기사에 ‘무자격’ 소장이라는 말 한마디만 넣어 줬어도 여러 사람이 한동안 상처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입주민의 재산과 이익을 수호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관리제도 정착을 위해 마련된’ 제도가 오히려 영세 아파트엔 적용되지 않아, 아직까지 무법이 판친다는 사실이다.
보이는 필수비용을 절감하면, 보이지 않는 더 큰 비용이 새 나간다.

한국아파트신문사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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