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특정 성별이나 연령대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직업이 있었다.
‘군인이나 경찰은 강한 체력을 가진 남성의 직업’, ‘스튜어디스나 간호사는 미모의 젊은 여성만의 직업’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의식이 발전하면서 이런 고정관념은 터무니없는 편견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런 고정관념이 남아 있는 직종이 존재한다. 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이 그렇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도입되면서 경비원은 ‘늙은 남자’만의 고유직업이 됐다. 그 어떤 여성도, 그 어떤 젊은이도 아파트 경비원을 해선 안 된다는 ‘룰’ 비슷한 것이 한국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왔다.
미화원은 정반대다. ‘청소아줌마(또는 청소할머니)’라는 오래된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파트 미화원은 그 어떤 남성이나 젊은이도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런 편견은 그들에 대한 인식과 대우로 이어진다. ‘경비원은 인생을 잘 못 산 남자가 마지막에 향하는 직업’이었다. 계단을 쓸고 있는 ‘청소아줌마’를 보며 엄마는 딸에게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너도 이담에 커서 저렇게 된다”고 공포심을 심어줬다. 당연히 그들은 멸시의 대상이 됐다. 미화원은 그나마 일찌감치 출근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쓸고 닦은 후 일찌감치 퇴근하면 그만이었지만, 경비원은 그렇지 못했다.
새벽 첫 차를 타고 출근한 경비원은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같은 할아버지 짝꿍과 교대하고 단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파트에 새로 생겨나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모조리 경비 몫으로 돌아갔다. 재활용이란 훌륭한 제도가 도입되면서 분리수거를 책임져야 했고, 지방정부가 음식물쓰레기를 모아가면서 오물과 구더기 범벅인 쓰레기통을 닦았다. 여름이 되면 잡초를 뽑고, 겨울이 오면 눈을 쓸었다. 윗집이 떠들어도, 주차를 잘못해도 일차적 분풀이는 경비원을 향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다. 칭찬은커녕 술 취한 입주민에게 욕설이나 구타를 당하지 않으면 그날은 ‘운수좋은 날’이 된다.
이 쯤 되면 이 일은 ‘극한직업’을 넘어 ‘극혐(極嫌)직업’이다.
그런데 이 끔찍한 직업에 언제부턴가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평균수명 100년을 향해 질주하는 시대. 대한민국 노인의 나이가 바뀌고 있다. 서울에 사는 65세 이상 ‘시민’에게 물어보니 ‘노인’의 기준이 72.5세라는 설문결과가 나왔다. 과거의 노인은 지금 그냥 아저씨일 뿐이다.
이제는 환갑에 은퇴해도 최소한 10년 이상 더 돈을 벌어야 한다. ‘아저씨’는 놀면 안 된다. 그래서 전직 선생님, 전직 사장님, 전직 의원님, 전직 교수님 등 화려한 ‘전직’들이 박대를 당해도 마다않고 경비직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경향은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본지 조사결과 경비원의 급여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200만원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1면) 일부 지역적으론 아직 180만원대에 머문 곳도 있지만 대부분 200만원 이상을 받고 있고, 많게는 290만원을 받는 곳도 생겨났다. 급여가 매우 높은 곳은 젊은 경비원이 근무할 수도 있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 100만원을 겨우 넘었던 걸 생각하면 대단한 변화다.
최저임금에 대한 입주민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뀐 효과인지 몰라도, 급격한 급여 인상에도 불구하고 경비원 수를 줄인 아파트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 보면 이제야 그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 제대로 이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 일부에선 일자리 안정자금 덕을 보고 있으므로, 이 지원이 끊기면 대량 해고 사태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경비원과 입주민 양측에서 ‘감단직 최저임금 적용 완화’ 목소리도 나온다.
또 하나의 문제는 관리직원 간의 임금 갈등이다. 경비를 단순노무직이라고 생각하는 기술직원들이 급여 차이가 거의 사라진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
관리사무소장은 입주민과 직원들 사이를 중재하느라 정작 본인 몫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파트 경비원은 극혐직업이라는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고 있다. 이참에 ‘아파트 일’이 모든 관리종사자들이 행복할 수 있는 ‘극강직업’으로 재탄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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