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석유왕자가 되어
매일 열두 시간 동안 똑같은 꿈을 꾼다
황금자동차와 전용비행기는
지도 속을 누비며 비즈니스를 펼친다
지도책에서도 볼 수 없는 시베리아 횡단 풍경에
깊숙이 황금 손을 펼쳐 광대한 불모지에 감쪽같이 철도를 깔아
차창 밖으로 끝없이 흘러가는 나무들과
그 사이로 비쳐드는 오후의 눈부신 햇살을 즐긴다
더없이 푸르고 따스한 바이칼 호수를 눈앞에 두고
열차로 달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두려울 뿐
매일 열두 시간씩 똑같은 꿈을 꾼다
커피 값보다 낮은 시급을 받으며 카페에서 호프집에서
칸칸이 빼곡하게 들어선 고시원 방을 찾아
몸을 누인다 꽃다운 시간 설레는 상춘객 한 번 못해보고
결혼이란 꽃밭에 하늘의 별자리 수놓고 싶지만
불행에 빠져드는 것이 겁이 나
변덕스런 환영에 잠드는 것이 두려울 뿐
매일 꿈 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따뜻한 수프를 먹을 수 있기를
바다를 향해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를 수 있기를
벽난로가 있고 붉은 식탁보가 놓인 숙소에 짐을 풀고
따뜻한 피로를 느끼며 꿈속에 빠져들기를 바라는 것처럼
열두 시간 씩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꾸는 억만장자
억만장자가 된 알바생만큼 그는 행복할까?
정채경
kslee@hap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