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보고 싶다

오정순l승인2019.01.30 10:18:29l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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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 순  수필가


나는 자식을 보물로 표현하며 키웠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부모에게 다 그렇게 축복받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이 위기인 사람도 있고 버려지는 인생도 있다. 그러한 출발선에서 가지는 어둠이 일생 동안 거북이 등딱지처럼 들러붙어 무겁게 살기도 한다. 
딸이라서 태어나는 순간 첫 숨부터 고통스러웠던 아기를 어른이 돼 만났다. 그녀의 세월에는 늘 답답함이 문제였다. 힘겨움의 근원지를 찾고 싶어 50년 인생을 살고 인간계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만났다. 
강의를 듣고 난 다음 10명 정도가 집단 워크숍을 하게 되는데, 꾸준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고 타인의 이야기도 들어가면서 왜 자신은 남과 다른가를 생각하며 치유해 나간다. 사람이 몇 번의 교육으로 문제의 발원지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자신을 개조해 나가는 일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이다.  
나는 정규 교육 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팀원을 만나 집단 워크숍을 7년간 이어갔다. 교재를 업그레이드 해가며 각자의 삶을 조련하도록 안내하고 해체했다. 놀랍게도 태어난 운명을 바꿀 수는 없어도 자라면서 커지는 상처를 줄여가며 팀원 모두 폭풍 성장했다. 그 변화는 무서울 정도였다. 빠르게 속내를 보이고 자가 수정하는 사람일수록 변화의 속도도 빨랐다.  
그들 중 한 여인은 성격도 온순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졌는데 자주 아프고 폐소공포증으로 여행을  다니지 못한다. 버스나 전철도 타지 못하니 비행기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딸도 낳지 못한다고 투정을 듣는 세상이 되고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높아진 세상에서 여행을 다닐 수 없다는 스트레스만 해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다양한 욕구가 정체돼 힘겨워 하더니 급기야 자궁경부암이란 병을 얻고 말았다. 특이체질로 수술도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견뎌야만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학습과 상담만으로는 기억 초기의 내면을 정직하게 볼 수가 없어서 그림치료를 시도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해도 무의식이 건드려지면 기억 속의 감정이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와 그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미지근한 우유를 먹이고 겉옷으로 그녀를 감싼 다음 명상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마음을 바라보고 그리도록 안내했다. 그녀는 발육 초기 지점의 자리에 검은색을 진하게 칠했다. 칠하는 동안의 얼굴은 점점 어둡게 변하더니 얼른 눈을 떴다. 나는 그녀의 출생 내막이 알고 싶어졌다. 어머니에게 묻지 말고 출산의 내막을 알 만한 사람에게 슬그머니 물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모의 증언을 들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태어날 아기가 여아일까봐 두려움에 떨면서 출산일을 기다렸다. 출산 순간, 여아라는 것을 알고 그만 앉은뱅이 책상 밑으로 아기를 밀어넣고 아기에게 수건을 덮었다. 하지만 이내 모성은 회복되고 수건은 걷혔다. 그 경험은 트라우마가 돼 어딜 가나 공기가 텁텁하거나 답답하면 모질게 울어댔다. 삶은 그렇게 이어져도 그녀는 자라면서 자신이 견딜 만한 조건만 수락하면서 어른이 됐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폐소공포증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고 병까지 얻어 사는 것을 힘들게 조여 왔다. 원인을 알았으니 걱정할 일은 줄었다. 먼저 어머니의 고충을 이해하고 아기 때 고통받은 자신을 보듬어주고, 그로 인해 파생된 인생의 파편을 거둬들이는 일만 남았다. 
나는 비행거리가 짧은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니 심호흡을 한 다음 하느님께 맡기고 비행기를 타라고 권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안다는 것은 절반의 치유다. 그녀는 신혼여행도 생략했을 것이기에 이벤트를 하나 더 주문했다. 정성을 들여 신부화장을 하고 남편에게 보석반지도 하나 청하고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웨딩 드레스를 골라 입고 남편과 웨딩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정식으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다. 
폐소공포증이 사라진 다음의 일들은 무엇을 해도 룰루랄라였다. 그녀는 그 이벤트를 성사시키고 참 많이 행복해했다. 이러한 변화에 몰입돼 있다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녀의 몸에 있던 암덩어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큰 감동은 치유를 부른다. 그녀의 기도는 얼마였고 그녀가 올린 미사는 몇 번이었을까. 우리는 7년 만에 해체했다. 이따금 자녀들 결혼 때 얼굴을 봤지만 그녀는 볼 수 없었다. 나는 요즈음 그녀가 보고 싶다. 

오정순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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