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칼럼 ⑮ >>집건법과 공주법의 발전방향

김영두 교수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집합건물 및 공동주택 분쟁, 규약·결의로는 해결 어려워
美 ‘콘도미니엄법’ 같이 분쟁 가능성 있는 내용 미리 정해야


게임의 룰은 게임시작 전에 만들어져야 한다. 
이제 곧 설날이다. 명절에 사람들이 모이면 고스톱 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옆에서 보면 게임 시작 전에 정할 것이 참 많다. 점당 얼마인지, 언제 따닥인지, 피는 언제 주는지 등등, 고스톱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이런 규칙을 기억하면서, 또 상대방의 패를 읽으면서 고스톱을 치는 모습이 신기해 보인다. 
만약 게임의 룰을 제대로 정하지 않으면 중간에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기술적 표준화처럼 고스톱에 관한 지역의 룰도 통합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결국 주변사람들의 인심을 더 많이 얻은 사람을 편드는 목소리에 의해서 게임의 룰이 정해지기 쉽다. 평상시 베풀었던 덕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고스톱에서 게임의 룰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다 한들, 자신에게 불리하게 게임의 룰이 정해진다 한들, 재미로 치는 일이니 모두 한바탕 재미있게 놀고 돈 딴 사람으로부터 아이들 용돈 두둑하게 받으면 그만이다. 
명절에 고스톱을 치는 일에 대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룰을 정하고 고스톱을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쩌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게임의 룰을 정해야 한다는 것은 놀이를 시작하는 동네 놀이터의 어린 아이들도 알고 있는 상식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상식이 집합건물이나 공동주택에는 적용될까? 
집합건물이 분양돼 입주민들이 입주해 각각의 전유부분을 이용하게 된다면 집합건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입주민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누구의 생각이 옳은지 치열하게 토론한 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해결책은 입주민들의 다수결에 의한 결의나 규약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그 문제를 다수결에 의해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1층 입주민이 자신의 집 앞에 있는 화단에 대해서 전용사용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개인정원처럼 이용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다른 입주민이 전용사용권을 부정하면서 정원을 원상회복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분쟁을 입주민들의 다수결로 해결할 수 있을까? 
1층 입주민이 결의에 의해서 소멸시킬 수 없는 전용사용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전용사용권을 부정하는 입주민들의 결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며, 결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본다.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지하층 찜질방 구분소유자가 지하층 복도를 배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찜질방의 영업으로 인한 소음과 먼지 때문에 영업을 중단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자 지하층 복도가 공용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찜질방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입주민들이 시설물의 철거와 복도의 반환을 청구한다. 찜질방 소유자는 해당 복도는 상가를 위한 일부 공용부분이기 때문에 아파트 입주민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찜질방의 복도가 모든 입주민과 상인을 위한 공용부분인지 아니면 상인만을 위한 일부 공용부분인지, 그 판단을 입주민과 상인의 결의나 규약에 의해서 정할 수 있을까? 
일부 공용부분인지 여부를 결의로 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의로 정할 수 있더라도 결의의 결과는 입주민과 상인 중에서 어느 쪽의 수가 더 많은가에 의해서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결의나 규약과 상관없이 소송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본다. 상가와 아파트가 결합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지하 주차장의 이용을 둘러싸고 입주민과 상인 사이에 종종 분쟁이 발생한다. 입주민들이 상가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주차장 이용을 제한하면서 상인들이 이에 반발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상가의 손님들로 인해서 입주민들이 주차에 불편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를 다수결이나 규약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미 당사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는데, 그 당사자들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의를 한들 상대방이 이를 수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구분소유자들이 입주를 시작해 공동관리의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구분소유관계를 분명히 해두는 것이다. 특히 분양단계에서부터 각 층의 복도가 어디까지 전체 공용부분이고 어디까지 일부 공용부분인지, 1층의 화단에 전용사용권이 설정됐는지 여부 및 그 범위, 용도가 다른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상인과 입주민들이 각각 이용할 주차장구역을 설계도서나 그 밖의 문서로 명확히 표시해주고 이를 분양계약서에 첨부해 분양계약을 체결하는 모든 당사자가 알 수 있도록 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분쟁의 발생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미국의 콘도미니엄법은 이러한 절차에 대해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사업주체(developer)는 구분소유관계가 성립하기 전에 전유부분과 공용부분, 전용사용권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하고, 앞으로 만들어지는 관리단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관리단이 구성되기 전까지 사업주체가 어떻게 콘도미니엄을 운영할 것인지 등 장차 문제될 수 있는 내용들을 미리 분명히 정해야 하고 이를 분양계약에서 수분양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분양계약 단계에서 법이 일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나, 그러한 정보가 앞으로 입주민들이 입주하게 된 이후에 발생하게 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인 법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입법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전개될 필요가 있다. 
게임의 룰은 게임 시작 전에 만들어져야 하듯이 집합건물이나 공동주택의 입주민들이 공동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룰이 정해지고 모든 입주민들이 공동생활을 위한 룰을 알고 있다면 공동생활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을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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