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한 사람들에겐 공통의 특징이 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성향이 그것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도 약한’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이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도 강한’ 사람은 야수와도 같은 독불장군과에 속한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야말로 모두가 희망하는 정의로운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린 어쩔 수 없이 때때로 강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약자 앞에선 뻣뻣한 사람이 된다. 그나마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다. 진짜 비굴한 사람에겐 그런 수치심조차 없다.
‘양심형’ 인간의 잘못을 용서해도 되는 건, 그가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사죄의 단계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굴형 인간의 잘못을 철저하게 단죄하지 않으면, 나중에 되치기를 당하는 게 인간사회다. 온정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베풀어야 한다.
제국주의에 민족을 팔아서 빌어먹던 친일파가 해방 후에 오히려 떵떵거리고, 그 후손들이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건 최소한의 가책도 모르는 비굴한 철면피기 때문이다.
몰렸다고 판단되는 위기상황엔 자비를 구걸하며 숨죽여 지내다가, 숨통이 트이면 은혜를 베푼 이에게 반격의 칼날을 들이대는 게 비굴형 인간의 전형이다. 조조가 인정받지 못한 이유다.
우리 사회에 점점 만연해 가는 ‘갑질’도 비굴형 인간이 늘고 있다는 심상찮은 증거다. 그냥 기분이 나쁘단 이유만으로 헤비급 격투기선수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때리며 큰소리치는 걸 갑질이라곤 하지 않는다. 그건 소아병적 치기가 충만했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이 보이는 정신나간 짓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게 저항하지 못할 약골이란 확신이 들 때 상대방을 짓이기는 게 갑질이다. 그래서 갑질은 치사하고, 옹졸하고, 비굴하다. 그리고 이런 비굴형 인간이 더 잔인하다.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도 참으로 많은 종사자들이 온갖 형태의 괴롭힘을 당한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저항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는 건, 그 비굴한 자들이 더 세게 되치기할 보복을 능히 짐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침묵만 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암흑과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아파트에서 폭행당해 화제를 몰고 온 사람들을 만났다. <관련 기사 1면>
그들에게 연락하기 전, 걱정부터 앞섰다. 그들의 쓰린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헤집는 건 아닌지, 혹 가해자와의 싸움을 포기하고 다른 데로 회피하진 않았을지, 또는 열패감으로 인해 취재를 거부하진 않을지….
기우였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여성이어서 더 관심을 끈 수도권의 두 소장과 강원도의 남성 소장. 그들은 하나같이 굳건했다. 심지어 밝고 씩씩하기까지 했다.
머리카락이 날리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얼굴을 맞은 소장은 동영상으로 방송까지 탔지만, 가해자가 실형을 살고 나온 지금도 담담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여러 차례 가격당하면서도 아무런 반격을 하지 않았던 덩치 큰 관리과장도 밝은 모습으로 일하고 있다.
많은 입주민과 아이들 앞에서, 두 사람에게 쓰러질 정도로 얻어맞은 소장은 사건 당시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그때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바보처럼 기죽어 살고 있었을 것”이라며 “소송이 나를 바꿨다”고 했다.
가해자들은 모두 단죄됐다. 세상은, 그리고 관리현장은 이렇게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다.
비굴형 인간은 약자에게만 강하다. 강자는 주먹이 세서가 아니라 용기가 있어서 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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