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방방곡곡 행사장을 누비며 공연을 펼친 사람들을 ‘광대’라 불렀다. 광대는 탈을 쓰고 연극을 하거나 인형을 이용해 공연하기도 했으며, 판소리 가수와 줄타기, 땅재주 등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까지 총칭했다. 옛날식 연예인, 엔터테이너, 종합예술인이었던 셈이다. 본래의 광대는 ‘가면 쓰고 놀이하는 사람’을 뜻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면은 대부분 ‘웃는 얼굴’이다. 우리 탈의 대표 격인 하회탈은 주름이 잔뜩 진 할아버지의 함박웃음을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서양 탈의 대표선수 ‘삐에로’도 마찬가지다. 하얀 얼굴에 붉은 곱슬머리, 루돌프처럼 반짝이는 코, 치아를 모두 드러내며 귀밑까지 찢어진 입술. 어떻게든 웃겨야만 한다는 절절함이 가득 배어 있다.
이유가 필요 없이 웃음은 그 자체로 좋다. 아이의 순진무구한 웃음,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의 행복한 웃음부터 손흥민의 골이 터졌을 때 작약하는 환희의 웃음까지. 그 어떤 웃음에도 흉하거나 보기 싫은 구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이 웃으면 스트레스가 줄고, 좋은 인상을 준다. 그냥 웃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두뇌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게다가 긍정의 전염성까지 있다고 하니 웃음은 돈 들이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도구다.
그러나 여기에 ‘억지’가 들어가면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란 게 있다.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뜻한다.
밀접연관어로 감정노동이 있다. 외국에선 1980년대 초반부터 연구된 개념인데, 우리 사회에선 2000년대 들어서야 조명받기 시작했다.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는 상담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감정노동의 폐해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무조건 친절해야 하는 고통은 마음과 몸을 병들게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랑합니다, 고객님”부터 외쳐야 하는 황망함은 많이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의 감정노동이 더욱 힘든 이유는 차원이 다른 고객횡포 때문이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나 ‘감정노동’은 여러 나라에서 사회문제화되면서 학자와 의사들이 연구했지만, ‘갑질’만큼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용어다. 그만큼 한국의 고객들이 유난하단 뜻이다.
우리 사회엔 나보다 조금만 약해 보이거나 아래로 보이면 목소리부터 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이나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택시를 타거나 음식점에만 가도, 을이 을에게 퍼붓는 갑질이 도를 넘는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진 취객이 경찰을 때리거나 파출소 기물을 파손하는 을들의 ‘용감한(?) 반란’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억눌려 살아온 한이 우리 민족 뼛속까지 배어있단 뜻이다.
요즘 외국영화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삐에로 분장을 하고 나타날 때가 있다. 화난 삐에로, 눈물 흘리는 삐에로, 사이코 삐에로, 심지어 섹시한 삐에로도 있다.
우리에게도 분노한 하회탈, 싸우는 하회탈,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하회탈이 나와야 한다.
악질 고객과 맞짱 뜰 수 있어야, 진심에서 우러나는 친절을 베풀 수 있다. 갑을이 대등하면 갑질은 멸종된다. 억지로 웃는 광대는 관객을 질리게 만든다.
올해는 온몸의 신경회로와 감각세포가 함께 짜릿하게 전율하는 진짜 웃음만 가득하길.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