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 아닌 우리는 ‘동행’ 합니다!

[신년특집] 갑질 없는 세상 향하여 ③ 온영란 기자l승인2019.01.23 12:05:19l1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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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행복한 세상 아파트에서 시작된 동행의 물결 
경비원과 입주민의 양보와 상생이 중요


 

주택관리 종사자 수는 주택관리사, 경비원, 미화원, 시설관리직원을 포함해 약 70만명으로 전국의 공동주택에서 많은 종사자들이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체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만큼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 수도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관리 종사자들에 대한 묻지마 폭행과 폭언, 갑질 등으로 관리사무소장 및 경비원이 자살 및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경비원들이 집단해고를 당하는 등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어 이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현실에서도 경비원과 입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자발적으로 찾는 아파트도 늘고 있다. 
2015년 서울 성북구 동아에코빌아파트에서 시작된 ‘동행(同幸)’의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행복하자’는 의미를 담은 ‘동행’은 갑의 횡포를 없애고 을을 동반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갑’과 ‘을’로 표기해 사용해왔던 각종 계약서를 ‘동(同)’과 ‘행(幸)’으로 바꿔 관리규약을 개정하고 관리업체 위·수탁계약서에도 동행계약서를 사용했다. 현재 동행계약서는 성북구를 넘어 전국의 아파트 및 지자체 등에서의 사용이 확산되고 있으며, 실제로 계약서상 경비원들의 고용 보장을 위한 조항을 추가하는 등 ‘동행’ 형식에서 더 나아가 경비원의 감원 없이 최저임금에 맞춰 급여를 인상하는 문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문제들이 입주민의 호응으로 쉽게 풀려나가는 등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경비·미화원 지켜낸 입주민들


최저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아파트 경비원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올해도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관리비 부담으로 경비원부터 줄이려는 아파트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입주민들이 직접 나서 경비원의 일자리를 지켜낸 아파트들이 있다. 
경기 하남시 소재 하남자이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CCTV를 늘리고 최저임금으로 인건비가 오른 경비인력 5명의 감원을 결정했지만 뒤늦게 소식을 접한 입주민들이 이를 저지하고 나서며 상황을 반전시켰다. 아파트 입주민 20명이 모이면 입대의 안건을 낼 수 있다는 관리규약 조항을 찾아내 해당 사안을 전체 투표에 부쳤고, 가구당 월 관리비가 3,800원이 오른다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현재 경비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62%를 넘어 경비원 감원 없이 고용계약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 아파트 입주민은 “인원 감축은 결국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우리는 한 공동체로 사회적 약자인 경비원들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지키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인천 서구 가좌진주2차아파트 역시 지난해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을 통해 경비인력 감축을 추진했지만 입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인력 감축을 막아냈다. 결국 경비원 14명과 미화원 4명 모두의 고용이 유지됐고 급여도 올랐다. 특히 휴게시간 확대 등 편법 없이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과 관리비 인상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을 충당했다. 
서울 성북구 동아에코빌아파트는 경비원만 17명에 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컸지만 난방시스템 교체 등을 통해 관리비를 아껴 인상분을 부담하기로 했으며, 경비업체 용역계약 시 ▲급여 1개월 이상 연체 시 계약 해지 ▲입대의 없이 경비원 교체 불가 ▲경비원 휴게시간 보장 및 휴게 공간 마련 등의 내용을 명시해 고용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또 ‘경비원과 미화원도 우리 아파트의 가족입니다’라는 문구를 만들어 계도활동을 진행하는 등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는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경기 파주시 대방노블랜드아파트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책으로 관리비 인상을 최소화하고 아파트 게시판 광고 등을 대행사를 통하지 않고 입대의가 직접 광고주와 계약해 광고 수익으로 1,000만원 이상의 잡수익을 확보하고 태양광, LED등 설치로 공용전기료 20%를 절감해 가구당 매월 6,700원씩 관리비를 차감하고, 경비원을 비롯한 관리직원 임금 인상에도 반영해 최저임금 및 급여 인상을 정상적으로 진행해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 석관동 두산아파트 입주민들은 2010년부터 경비원의 임금 삭감 대신 전기료 아끼기에 나섰다. 1,998가구 중 1,000여 가구가 절전에 동참했으며 이들이 아낀 전기요금 총액은 연간 1억원가량에 달해 최저임금 인상 여파에도 불구하고 경비원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울산 중구 소재 리버스위트아파트는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비원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임금 추가 인상을 결정하고 함께 상생해 나가기로 했다. 이 아파트는 휴게시간에 근로자들을 아예 출근하지 않게 해 6명의 경비원과 미화원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기 고양시 강선마을6차아파트는 첫 입주 후 24년째 32명의 경비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가구별로 월 700~800원의 경비원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하기로 하고 현재의 경비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광진구 번동 소재 한솔솔파크아파트 역시 가구당 월 4,200원을 더 부담하고 경비원들과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경기 파주 노을빛마을2차아파트는 2017년부터 더불어 살아가는 아파트 공동체 실천을 위해 경비·미화원 상생고용을 위한 협약을 체결, 협약서에는 ▲우리는 안정된 고용을 지지한다 ▲우리는 편안한 휴게시설을 마련하는 데 노력한다 ▲우리는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함께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우리는 아파트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잊지 않고 존중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에도 대화와 양보를 통해 함께 협력하며 고용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 같이 경비원과의 공존을 결정한 아파트 입주민들은 “일부 입주민들은 경비원수를 줄여 경비 인건비를 감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 같이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며 상생의 취지에 공감하는 입주민이 더 많았다”면서 “경비원들 역시 안정적으로 근무하면서 단지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경비원을 줄이려는 아파트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아파트의 가슴 따뜻한 결정이 유독 돋보인다.

 

상생문화 확산 위해 지자체도 적극 나서

경비원에게  ‘애정과 관심’ 전한 입주민들
 

지난해 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아파트 경비원들은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재활용 분리수거 및 옥외 단지 환경정화 등의 작업을 많이 수행하는 경비원들은 40℃를 넘나드는 경비실의 기온과 24시간 격일제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근무가 더욱 힘들었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경비실에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검은색 봉지를 씌우거나 관리비가 많이 든다며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내용을 아파트 승강기에 붙여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입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성금을 모으거나 입대의 운영비를 쾌척해 경비원들에게 시원한 여름을 선물한 아파트도 있다. 
강원 속초시 산수빌아파트는 소규모 임대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입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 경비원들은 도움을 준 입주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작은 잔치를 열어 지역사회에 감동을 안겨줬다.
부산시 북구 화명동 한일유앤아이아파트는 지난해 경비실 4곳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경비원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민원을 수차례 접한 이 아파트 입대의는 에어컨 구입과 설치비용 마련을 위해 회의를 진행한 결과, 입대의 운영비를 받지 않고 이를 에어컨 구입비로 대체해 에어컨을 설치함으로써 입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이외에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삼부아파트 입주민들은 경비초소 6곳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전기요금은 입주민들이 십시일반 관리비에서 분담하기로 결정했으며, 인천 작전현대2-1차아파트는 지난해 7월 에어컨 설치를 위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주민투표를 실시, 73%가 에어컨 설치에 찬성함으로써 경비·미화원들이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었다. 
에어컨 설치뿐만 아니라 경비원의 암투병 소식에 직접 나선 아파트도 있다. 부산 해운대구 경동제이드아파트는 직장암과 신장암에 걸려 투병 중인 경비원 2명을 위해 아파트 입주민들이 직접 모금에 나서 약 2,000만원을 치료비로 전달하기도 했다. 모금함에는 ‘꼭 쾌차해 아파트로 다시 돌아오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담겨 있어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대구 수성구 소재 송원맨션 입주민들은 이 아파트에서 15년 동안 근무한 80세 경비원 A씨가 치료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게는 1,000원부터 많게는 10만원까지 성금을 모아 약 350만원을 전달했으며, 일부 입주민은 경비원이 추울까 전기매트를 경비실에 가져다 놨고 지난해 여름에는 입주민들이 경비실에 에어컨까지 설치했다. 
부산 해운대구 소재 아파트 입주민들 역시 교통사고를 당한 경비원을 위해 헌혈증과 치료비를 모금한 사실이 알려지며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평소 열심히 근무하던 경비원이 안타까운 사고로 다치자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에 나선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아파트 관리회사가 1,000만원을 쾌척했고 입주민들도 십시일반으로 모금에 참여해 성금 1,600만원과 헌혈증 90여 장을 모아 전달했다.
이처럼 입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경비원에 ‘갑질’이 아닌 ‘애정과 관심’으로 답한 훈훈한 소식이 전국에 전해지며 많은 아파트가 에어컨 설치에 동참했고, 경비실 및 휴게실의 에어컨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지자체가 확산되기도 했다. 
입주민들의 동행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각 지역의 구청과 산하기관, 유관단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성북구의 경우 입주민들이 스스로 시작한 동행계약서를 상생문화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동행(同幸)’을 성북구의 대표 슬로건으로 내걸고 동행계약서 사용과 동행 활성화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확산하기 위해 동행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동행계약서의 표준안을 만들어 배포하고 도입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태조사 등을 실시하며 관내 아파트뿐만 아니라 전국 아파트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입주민, 입대의, 경비원, 관리주체 등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경비원도 행복한 동행 아파트 만들기’ 워크숍을 개최해 최저임금 인상과 경비원 처우 문제에 대해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등 꾸준히 소통의 창구를 만들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는 경비원과의 상생을 위한 ‘같이(價値) 프로젝트’를 통해 ‘가치’ 있는 공동주택 주거문화를 시 전체에 확산해 안전하고 더불어 행복한 공동주택 주거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같이 프로젝트’는 공동주택 내 상대적 약자인 경비원의 근무 환경 등에 대한 사회적,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민과 함께 입주민과 경비원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는 프로젝트로, 시는 자발적으로 도출된 실천과제를 참여 단지에서 잘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행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경남 창원시는 공동주택 경비원들의 권익보호 및 주거공동체 상생문화 조성을 위해 지난해 7월 ‘창원시 공동주택 관리 지원 조례’ 일부를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조례는 경비원 등 공동주택 근로자의 근로여건 및 환경 개선을 위한 비용 지원, 경비실 및 근로자 휴게시설 보수에 필요한 사항, 부당대우 발생 단지에 대한 지원 제한 등을 담고 있다.
창원시는 경비원의 부당대우 문제는 아파트 단지안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대부분의 경비원들이 많지 않은 급여를 받으며 실직이나 부당대우에 시달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동주택 관리 유관단체와의 간담회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부당대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 광진구아파트동대표회장연합회는 지난해 ‘대한민국 경비원상’을 만들고 광진구 아파트 내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단지의 발전과 입주민을 위해 헌신하는 경비원을 발굴, 이들의 자긍심과 사기를 높이기 위해 경비원에 대한 시상을 진행, 4명의 경비원이 표창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또 서울 성북구의 50여개 아파트로 구성된 성북구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는 2015년부터 경비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선언을 통해, 관리비 절감을 목적으로 한 경비원 감축을 하지 않으며 경비원의 정년을 연장해 고용불안 해소에 앞장서 지역사회에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굳이 거창하고 어려운 제도를 만들지 않아도 갑을계약서를 동행계약서로 바꾼 한 아파트의 작은 노력에서 시작된 동행과 상생의 물결이 입주민들의 관심과 호응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온영란 기자  oyr@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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