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갑질 없는 세상 향하여②

 

누가 경비원을 ‘인권절벽’ 내몰았나

입주민 폭행 등 원인으로 지난해 경비원 3명 사망

저소득, 고용불안, 장시간 근로, 휴게시간 비 보장, 냉·난방기 없는 열악한 근무환경, 그리고 갑질. 아파트 경비원과 관련된 단어들을 나열하면 이처럼 부정적인 카테고리가 주를 이룬다. 아파트의 주요 구성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경비원에 대한 처우는 그 어떤 직종보다도 열악한 상황. 이 때문인지 경비원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인권과 존중을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지난해 10월 국토교통위원회 박완수 의원(자유한국당, 경남 창원 의창)이 주택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들이 일부 민원인으로부터 폭행이나 폭언을 당하는 사례가 무려 4,060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폭언이 1,464건으로 가장 많았고, 주취폭언 1,330건, 주취행패 688건, 기타 행패 184건 등의 순이었으며 주취폭행 81건, 흉기협박 32건, 자해 20건이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경비원 해고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아파트 사례들이 점차 확산되며 경비원 인권과 처우 개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기는 하나, 이는 전국 수만개 공동주택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들은 여전히 입주민들의 폭언과 폭행 등에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입주민 폭행으로 인한 경비원 사망’ 사건만 두 건, 이로 인해 사망한 경비원은 3명이었다. 
특히 가장 최근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경비원 폭행사건의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입주민 폭행으로 인해 뇌사에 빠져있다 한 달여 만인 11월 23일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폭행의 원인은 ‘경비원이 층간소음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피의자는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지난해 12월 해당 사건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피해자 가족은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피의자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해당 입주민은 주취감경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지난해 5월에는 서울 강남구 오피스텔에서 60대 경비원 두 명이 입주민이 휘두른 흉기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안겼다. 해당 입주민 역시 흉기를 집어든 이유에 대해 층간소음 및 정신질환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의 폭행 및 폭언 사건이 줄을 이었다. 지난 한 해만 무려 14건의 굵직한 갑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지난해 11월에는 대구에서 경비원이 근무자용 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같은 달 경기 파주에서는 아파트 정문 차단기가 빨리 올라가지 않아 본인이 택시비를 더 지불했다는 이유로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하는 동시에 “아파트 경비원은 개, 개가 주인에게 짖느냐”는 등 폭언을 했다. 4월에도 지인의 차량이 아파트 정문 차단기를 통과하지 못해 본인이 길가에서 하차한 데 격분한 입주민이 경비원을 주먹으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서울 관악구에서 경비원이 만취 입주민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해 치아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고, 경기 김포에서는 술에 취한 입주민이 비닐 분리수거를 제재하는 경비원을 분리수거장으로 끌고 가 20여 분간 무차별 폭행했다.
또한 40℃에 육박하는 폭염 속 에어컨도 설치돼 있지 않은 경비실에서 경비원이 잠시 졸았다는 이유로 관리사무소 직원이 사직서를 강요한 사건도 있었으며, 15개월간 경비원에게 근무시간 및 휴게시간 구분 없이 대리주차를 시킨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원할 때 차량을 빼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강요했던 사건도 보도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는 입주민 4명이 본인들의 요구를 거부한 경비원 한 명을 집단폭행했으며, 지하주차장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입주민에게 경비원이 근무매뉴얼에 따라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하자 뺨을 때리고 담뱃불로 3차례 정도 뺨을 지진 사건도 보도됐다. 경비원이 청소하며 바닥에 놔둔 쓰레받기가 통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입주민이 경비원을 주먹으로 수차례 가격하고 머리를 아스팔트 바닥과 나무에 수차례 내리찍는 등 잔혹하게 폭행한 사건도 충격을 안겼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경비원 수난사례가 매월 2~3건 꼴로 지속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만한 현실적 대책이 마련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유 없이 무릎 꿇은 누군가의 아버지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에도 ‘갑질’은 현재진행형


지난 2017년 3월 ‘경비원에 대한 갑질 금지’ 내용을 담은 공동주택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제65조 제6항)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갔다.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입주자 등, 입대의 및 관리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토교통위 박완수 의원에 따르면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및 경비원에 대한 폭언·폭행사건 건수가 2013년도 194건에서 2016년 1,209건으로 6배 넘게 급증하다가 2017년 906건, 2018년 6월 말까지는 358건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 개정과 더불어 아파트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 등 처우 개선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입주민의 갑질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그 잔혹성도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경비원에 대한 폭행·폭언 사건의 공통점은 특별한 분쟁상황이 아닌 일상적·정상적 근로상황에서 이뤄지는 점과, (가해자가 주장하는)폭행·폭언에 이른 이유에 비해 가해 정도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이다.
유독 경비원에 대해 더욱 쉽게, 근거 없이 심각한 폭행 및 폭언이 가해지는 이유는 경비업무에 대한 사회적 경시풍조와 이에 따른 근로조건 악화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7년 11월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주택관리연구원이 주관한 ‘한번 을은 영원한 을인가요?’ 세미나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수영 변호사는 아파트 경비원의 근로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입주민의 갑질을 꼽았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입주민의 자정노력 의무에 더해 경비원 고용안정, 공식적 소통창구 마련, 휴게시간 보장 등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세미나에 참여했던 한 패널은 “주택관리 종사자들의 처우 및 환경 개선에 대한 문제점이 몇 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하며 주택관리 종사자들의 실질적인 권익이 향상될 수 있는 제도상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광주경비원일자리협의회 출범 
경비원 인권 보호 ‘걸음마 단계’
최근 아파트 경비원들의 권익보호 및 처우개선을 위한 단체가 전국 최초로 구성, 갑질행위 등에 적극 대응키로 했다. 인권이 절벽에 내몰린 경비원들이 스스로 권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셈이다. 
지난달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광주광역시 동구 YMCA에서 광주경비원일자리협의회(대표 서연진, 이하 경비협)가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 출범했다. 경비협은 지난해 4월 1일 광주시의회가 제정한 ‘공동주택 경비원 고용안정 조례’를 기반으로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조성됐다. 
경비협은 광주지역 아파트 경비원 3,800여 명 가운데 8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올해 상반기까지 광주지역 전체의 절반 정도인 2,000명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아파트 경비원 인권 존중, 최저 생계임금 및 휴게시간 보장, 고용 안정화를 중점 추진사항으로 정하고 근로환경 개선에 노력해 나간다. 특히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입주민들의 공존·상생의식 개선뿐만 아니라 고령 경비근로자들도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도 향후 지자체·입대의·용역사와 함께 4자 협의체를 구성해 단기고용 관행으로 인한 고용불안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고, 원활한 고령인력 채용을 위해 관련기관 및 단체와의 MOU를 통해 협력키로 했다. 아울러 부당한 일을 당한 경비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협의회 차원에서 지원에도 나선다.
서연진 대표는 “아파트 경비원의 근로환경이 열악한 이유에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이 중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어르신들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 확산과 함께 공존의 방법에 대해 아파트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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