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바다가 있고, 마음의 여유와 몸의 편안함을 주는 시공간의 여행이 기다린다

강릉! 아득한 시간의 기억

 강릉이라는 지명은 필자에게는 아주 오래된 동네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양양이 친정이었던 어머니는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이면 며칠간이나 그 곳에 머물다 오셨다. 38선 이북지역이었던 양양이 전쟁이 끝나 남쪽지역으로 바뀌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일한 상속자 외삼촌이 북으로 갔다는 추정으로 어머니 친정집의 재산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통일이 돼 외삼촌이 돌아오면 외삼촌에게 상속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외갓집 재산은 종중에서 맡기로 합의했고, 어머니는 논 몇 마지기에서 나오는 추곡만 받으러 다녀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는 완행버스가 털털거리며 비포장도로에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시절이라 포천에서 서울까지 반나절이나 걸렸고, 서울에서 다시 양양까지도 한계령의 낭떠러지가 차창으로 보이는 좁은 길을 넘어 꼬박 하루가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가는 길이 사흘이나 걸리니 어머니가 돌아온다는 그날은 나는 집 뒤편 산에 올라 어머니의 모습이 보일 정거장으로 이어지는 신작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봤다. 그러다가 보따리를 이고 저 멀리서 걸어오는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산을 뛰어 내려가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기억난다. 
한번은 떼를 쓰고 쫒아 가겠다는 나를 어쩔 수 없이 데려가던 그 해 가을. 나는 바다를 처음 봤다. 어두운 새벽 마장동에서 버스를 타고 양양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낙산사 앞에 내려서 논둑길을 걸을 때는 추수 끝난 논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외삼촌할아버지 댁의 좁쌀이 섞인 노란 밥의 구수한 냄새와 아궁이 숯불에서 갓 구워 낸 알밴 도루묵의 짭조름한 맛. 특히 씹을 때마다 ‘또도독’거리던 도루묵은 지금도 ‘알 또독이’이라는 나만의 이름으로 도루묵을 기억한다. 어머니와 외삼촌할아버지의 “강릉 김씨 문중…”두런거리는 이야기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지금도 겨울이면 도루묵 생각이 나는 까닭은 어린 그 시절이 은연중에 생각나기 때문일까. 그렇게 양양과 강릉은 아주 오래된 무엇인가가 있는 동네로 내게는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고속도로가 생기고 고속철도가 생겼다. 시간은 고속철보다 빠르게 흘렀다.

 

우리 잠깐, 커피 한잔 하고 올까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동해바다를 생각하면 속초, 대포항, 오징어와 신선한 해물이 먼저 생각났고, 꼼꼼히 지도를 보고 여행 계획을 세웠었다. 강릉은 하늘의 달, 바다의 달, 호수의 달, 술잔 속의 달, 사랑하는 사람의 눈망울에 비친 다섯 개의 달을 만들었던 경포대의 유유자적 낭만적인 풍류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부였다. 이제는 교통여건이 좋아지고 문화가 바뀌며 동해바다하면 바다, 커피, 강릉이 어우러져 강원도에서 제일 많이 찾는 여행지로 강릉이 꼽힌다.  
도심의 커피집이 바닷가에 생기고 숲속에도 생겼다. 이제는 강릉 여행이라면 보헤미안, 테라로사, 커피커퍼 뮤지엄 등 커피와 관련된 업체가 먼저 떠오른다. 커피 애호가들은 일부러 찾는 곳들이다. 휴일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평일에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의 섬세한 맛과 향기가 만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안목항과 마주한 안목커피거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경포대로 이어지는 2km가량의 솔밭과 송정해변의 시작점이 커피거리 앞이라,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파도가 끊임없이 모래를 적시는 바닷가 산책이 커피와 어우러지는 데이트 장소로 그만이다.
숲과 바닷가 두 곳에 자리 잡은 커피커퍼 뮤지엄은 단순히 마시는 음료의 범주를 넘어 우리 생활 속 기호식품으로 자리한 커피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초기 로스터에서부터 녹색의 생두가 갈색의 원두가 되는 원리와 과정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또한 커피를 분쇄하는 그라인더와 핸드밀이 연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커피추출 도구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입장료 8,000원에 커피 한 잔 값도 포함돼 있어 일거양득이다. 
테라로사 본점인 테라로사커피공장은 주인이 직접 건축한 넓은 실내의 인테리어가 특색 있으며  바리스타가 내리는 커피를 직접 눈으로 보고 북적이는 곳에서도 각자의 여유 있는 공간에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뒤뜰로 가는 나무다리를 건너 테라로사의 예전 건물 사이로 나가면 300년이나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마음이 여유롭다. 테라로사의 뜻은 이탈리아어로 토지를 뜻하는 테라(terra)와 빨간색의 로사(rossa)가 합쳐 빨간색의 흙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삼척, 단양 등 석회암 지대에서 관찰되며 카르스트지형이 형성되기도 한다.  
보헤미안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바리스타인 박이추 선생의 커피 철학을 담아 낸 곳이다. “쿠바의 아바나 동쪽, 작은 어촌마을 코히마르에 찾아간 헤밍웨이는 쿠바의 정열과 아름다움에 빠져 20년간 머물며 ‘노인과 바다’ 등 대작을 남겼다. 커피 애호가였던 헤밍웨이의 커피로 불리는 쿠바 크리스탈마운틴은 깊은 향과 부드러운 맛으로 마음의 여유와  편안함을 선사해 힐링커피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에멘 모카 마타리는 빈센트 반고흐가 프랑스 남부 카를로 이주 후 프롬광장의 카페 테라스에서 즐겨 마셨다 한다. 그의 술친구였던 우편 배달부 룰랭이 즐겨 찾았던 카페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 있는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는 지금도 영업 중이어서 반고흐의 유명세와 아울러 오래된 카페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유의 흙냄새, 초콜릿향이 매혹적인’이 커피는 세계 최대의 커피 무역항 예멘의 모카항(MOCHA)에서 붙여졌다. 신의 커피로 불리는 파나마 게이샤는 에디오피아 서남쪽 게이샤(Geisha) 숲에서 자라던 커피 품종 이름으로 세계 3대 커피인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예멘 모카 마타리와 하와이 코나 커피를 능가 한다는 커피헌터들에게 찬사를 받는 커피로 보헤미안에서  맛 볼 수 있다. 강릉의 대표 커피 명가들은 각각의 긍지를 가지고 커피를 마실 분위기부터 커피의 맛까지 문화적인 예술로 승화했다는 공통점들이 있다.

커피 한잔 맛의 여행

커피에는 역사와 문화가 있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의 기호 식품으로서가 아니라 커피 생산지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마시는 세계여행이다. 커피나무는 주로 해발 1,000m 이상인 고산지대의 구름과 화산성토양과 해양성 기후에서 자란 커피나무의 열매를 알아준다. 단맛과 흙냄새, 초콜릿향, 과일향, 쓴맛, 신맛,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한 맛 등 뒷맛의 부드러움과 바디감 등에서 맛을 알아차리는 음미의 섬세함이 있다. 맛을 잘 모른다고 해도 커피 내리는 냄새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코와 혀에서 느끼는 커피 한잔의 짧은 시간이 오랫동안 마음의 여유와 몸의 편안함을 주니 그곳에서 힐링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그 커피를 마셨을 예술가와 혁명가, 시공간의 테이블을 마주하며 맛의 세계로 떠나는 간접 경험의 여행을 느낄 수도 있다. 그곳에는 바다가 있어 더욱 그렇다. 강릉의 바다가 겨울바람에 더욱 깊게 앉아 푸른빛을 더하니 오감으로 느끼는 여행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여행 정보
•커피커퍼Coffee Cupper 뮤지엄(본점)  강원 강릉시 왕산면 왕산로 2171-17 
•테라로사 커피공장(본점)  강원 강릉시 구정면 현천길 7
•보헤미안박이추커피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해안로 1107
 •먹거리 :  강릉에는 꾹저구탕이 있다. ‘저구새가 ‘꾹’ 집어 먹는 고기’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꾹저구는 강릉의 연곡천에서 나는 민물고기에 강릉지역의 막장을 풀어 만들어 그 맛과 영양이 풍부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그 외 삼식이로 불리는 삼세기탕, 된장‧고추장을 풀어 만든 얼큰한 장칼국수가 있고 감자옹심이, 가오리찜, 순두부짬뽕 등도 있다.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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