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민족 역사에서 봉건시대 마지막 왕조국가였던 조선의 이념은 ‘유교’다.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 유교는 수천 년 동안 동양사상을 대표해 왔다.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반영해 생활이념으로 삼은 게 삼강오륜이다.
삼강에선 법도를 규정하는 게 유독 눈에 띈다. 신하는 임금을, 아들은 아버지를,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 게 근본이다. 오륜에도 어른과 아이 사이에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長幼有序)고 가르친다.
유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수평적 평등한 존재로 보기보다는, 수직적으로 서열화해 그 사이의 예를 강조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긍지로 삼아 예의를 지키며, 어른을 공경해 온 민족임을 자부했다.
그런데 유교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철학이 아니다.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왕과 귀족계급이 강제로 주입한 지배이념이었다.
공자의 본 사상은 왕이 백성에게, 어른이 젊은이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기 위해 스스로 덕을 쌓고 인을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지만, 국가지배이념으로 도입되면서 백성을 억압하기 위한 기능적 장치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렇게 오염되다 보니 왕조국가가 무너지고, 근대를 거쳐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유교는 ‘잊혀진 종교’가 됐다. 지금은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파면당하고, 아버지는 자식의 정신상태를 봐가며 대화해야 하고, 남편이 술만 마시고 가사를 분담하지 않으면 소박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전통 사상의 전복이다. 오랫동안 유교기풍이 우리 사회의 미덕인 양 포장됐었지만, 이젠 가부장제와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전락해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유교의 몰락은 철학적 본질을 벗어나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기득권의 지배논리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통제수단으로 악용한 봉건체제와 사술적 이론기반을 제공한 어용학자들이 유교를 죽였다.
장유유서가 어른을 공경하는 우리 민족의 자랑인 것처럼 선전해 왔지만, 무색하게도 전 세계에서 나이 든 경비원을 욕하고, 때리고, 죽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관리사무소장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될 정도로 흔한 일이 돼 버렸고, 여성 소장의 머리채가 들썩일 정도로 심하게 때리는 장면이 CCTV에라도 잡혀야 언론이 조금 관심을 갖는 정도다.
외국이라고 우발적 사고가 없지야 않겠지만, 우리 사회가 정말 심각한 건 이게 상습적이고 고질적이고 전국적이란 점이다.
지난 10일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서 입주민에게 폭행당해 숨진 경비원을 위한 성금 전달식이 있었다. <관련 기사 1, 2면>
서울에서 숨진 노령의 경비원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경북 구미의 최익수 주택관리사가 시작한 작은 일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성금 전달식으로까지 이어졌다.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일면식도 없는 이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기꺼이 은행점포나 인터넷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이 1,250명이나 됐다는 게 감동을 준다.
가끔 입주민과 관리직원의 관계가 임금과 신하의 관계인양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왕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신하를 폭행하고 죽이면 군(君)으로 격하돼 탄핵 당한다.
고령 경비원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사람은 아들뻘의 입주민이었다.
변질된 장유유서는 죽었지만, 약자연대의 환난상휼은 살아 있다. 
노인은 나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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