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새해라는 단어에는 새로운 기대와 설렘이 담겨있다. 그러나 수시로 일어나는 변화 속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우리 개인적으로는 안도와 평안이 주어진다. 온갖 어려움 중에도 견디며 이겨내야 하는 성질의 것들을 두고 타인이나 사회에 책임을 전가하는 습성을 길러서는 안될 일이다. 자연재해와 각종 사건사고 소식도 함께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둠을 몰고 온다. 요즘에는 공부를 마친 젊은이들이 절벽 앞에 선 듯 난감지사의 소식을 실어나를 때는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기에 기도를 하는 정도로밖에 개입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해 얻은 오늘인데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가. 이날이 오기까지 속박의 시절도 지나왔고 자유롭게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6.·25의 참혹한 강도 건넜고 혁명의 다리도 통과했다. 우리는 가난에 대해 빛나는 졸업장을 탄 민족이 돼 세계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일이 숱하게 지나갔다. 스포츠 영웅, 가난을 뚫고 피어나는 예능의 꽃들이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며 외화벌이를 해왔다. 
그러나 올해 벽두부터 고향에 가지 못하는 젊은이들, 연애는 하고 있으나 결혼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때문에 마음놓고 말을 하기가 불편하다. 아무도 투정하지 않는 사회는 있을 수 없더라도 수고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살아갈 자리는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견해다. 젊은이들이 이상을 낮추고 싶어도 낮출 것조차 없다는 사실이 비극이긴 하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인데, 우리에게 가장 공평한 것은 태양이다. 모두에게 고루 비치는 그 빛으로 우리의 정신이 다시 깨어나고 일상이 싱싱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새해를 맞는다. 
종교인인 우리 부부는 미사로 신년맞이를 하는데 먼저 일어나는대로 기도를 한다. 초에 불을 붙이고 이 지상의 가장 큰 단위부터 축복을 빈다. 이는 정화된 기운으로 영적 산소공급을 한다고 생각하며 진심을 담는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고 우리나라, 우리 동네, 우리 집으로 좁혀가며 줄줄이 축복기도를 하고 나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렇다고 우리 형제자매와 가족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기도 시간이 길어졌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기에 정화한 기운을 무통장 입금하듯 대상에게 불어넣는 행위다. 
지난해에 인문학 강좌에서 들은 내용을 참고해 지나치게 나의 견해를 앞세우거나 강조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시대의 중심에 선 사람들이 아니라서 세대 간의 불편 요소가 다르다. 그래서 다수의 견해를 따르고 수용하는 자세로 살려고 한다. 기도를 마치고 체조를 하고 나자 남편이 일어난다.   
“여보, 우리 맞절을 하고 한 해를 시작합시다.”
이리하여 둘이 정중하게 큰 절을 하고 조금 더 다가가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함께한 다음 따뜻하게 포옹을 했다. 우리에게 남은 온기를 합해 한 해를 잘 살아보자는 의식이다. 이후 간결하되 고르게 아침 식탁을 차려 새해 첫 식사를 마치고 새해 첫 미사에 갔다. 나는 한복을 차려입고 남편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새다. 의관을 갖추는 것은 정신을 정갈하게 갖추기 위한 예의다. 가는 길에 둘이서 감사 시리즈를 늘어놓는다. 하마터면 ~할 뻔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무한감사다. 성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얼굴이 환해져서 만복을 다 받은 사람처럼 됐다. 
성당에는 아침 미사를 마친 사람들의 세배가 끝나간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세배를 하고 텀블러 한 개와 1,000원을 복돈으로 받았다. 이 또한 종이컵 퇴치를 위한 성당 차원의 배려다.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니 참 좋다. 
돌아오는 길에 날아가는 참새에, 울타리에 웅크리고 있는 들고양이에,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에, 운전기사들에게, 아니 우주만물에게 새해에는 복을 많이 받고 재앙 같은 것은 모른다고 그러라고 우스개 기도도 했다. 골목길에서는 가정마다 웃음꽃이 벚꽃처럼 피게 해 웃음소리가 창을 넘어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내 남편 ‘의지맨’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걷는 ‘걷기맨이라 첫날 나와 함께 걷기를 바란다. 꽁꽁 싸매고 나가 걷고 돌아오니 이 또한 천국이다. 깔끔하게 스타트를 했으니 작심삼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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