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얼마 전 요절한 실력파 뮤지션 전태관이 속한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라디오 음악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비가 내리던 어느 초여름날 저녁 퇴근길, 힘이 넘치는 파워보컬로 인기가 높은 김종진이 멘트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하죠?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평생 음악만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음악이 본업이 되고 나니 때론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생업을 위한 돈벌이는 다른 걸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취미생활로 즐길 때, 어쩌면 그 ‘하고 싶은 일’이 가장 큰 행복을 선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전 중 들은 얘기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이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걸 조사해 자료로 만들어 낼 만큼 한가한 통계전문가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사람은 아마도 극히 드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하고픈 일을 갈망하며 살아갈 뿐이다. ‘끔찍하게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하는 걸 위안 삼는 게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김종진 씨의 말처럼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을 때 그 자체가 생존의 압박으로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 입장에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수명이 늘고, 시시각각 급변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생애에 경험하게 되는 직업의 숫자도 점차 늘어간다. 1980년대까진 한 사람이 평생 한 직장이나 직업에 머물다가 은퇴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웠지만,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요즘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죽기 전까지 두세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갖는 게 보통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직업군(群)은 인생의 첫 직업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관리사무소장부터 부장, 과장, 반장, 주임, 기사, 경리, 서무, 경비원, 미화원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의 첫걸음으로 이들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은 사람이 이 업계에 진입하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있다 해도 다른 일을 알아보다가 때를 놓쳐 하는 수 없이 들어올 뿐이다.
공동주택 관리는 그만큼 젊은 사람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업무의 질 자체가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겐 보통 버거운 게 아니다.
‘입주민과 관리직원 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요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갑질’이다. 그만큼 전염병처럼 만연해 있다.
지난해에도 여러 소장이 입주민으로부터 수난을 당했다. 단지 밖에서 벌어지는 공사장 소음이 시끄럽다고 때리고, 멈춰진 승강기 때문에 업무시간보다 일찍 달려온 소장을 폭행하고, 층간소음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흉기를 든 사람도 있었다.
경비원은 공동주택에서 가장 박해받는 자리라고 할 만큼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다. 평균 연령이 가장 높으면서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온갖 욕설과 폭행은 물론이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다. 폭언과 폭력의 주체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단 얘기다.
‘밴드왜건 효과’라는 게 있다. ‘유행에 따라 소비하거나 유행에 동조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심리’를 말한다. 
공동주택에 갑질이 만연해 있다고 하니, 너도나도 갑질의 일상화에 뛰어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지가 신년특집 기획으로 삼은 주제는 ‘갑질 없는 세상을 향하여’다.
‘스놉효과’는 어떤 상품이 유행하면 오히려 그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심리를 말한다.
본지의 신년기획이 갑질의 밴드왜건을 박살내고, 대대적인 스놉효과의 태풍을 일으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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