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2019년, 나의 해는 환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새해가 돼도 해를 보지 못한 인생이 수두룩이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답이 없을 때 우리는 새해맞이 계획에 무엇을 더 적어 넣어야 할지 답을 얻지 못하고 새해로 출발한다.
지난 연말에 모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마치 대학 다닐 때처럼 일일치킨 집을 열어 장애복지관 식구들과 음식 나눔 행사를 치르고, 그들과 함께 펴낸 책 사인회를 열었다. 우리가 마련해 간 작은 선물을 두고 행운권 추첨도 했다. 젊음이 소환돼 내 곁으로 온 것처럼 마음이 순수해졌다. 내 딸과 동갑내기인 복지관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나눔 행사를 진행하는 즐거움을 맛봤다.
한 해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시기라서 행사도 다양하지만 하루하루가 SRT를 타고 갈 때의 바깥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연말에 성당의 신부님이 추천하는 책을 읽고 밑줄 그은 문장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글로 쓴 내용을 책으로 엮느라고 다시 한번 긴장도를 높였더니 어느새 아기 예수가 활자를 딛고 온 듯 우리에게 왔고 새해의 태양도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새 다이어리에 기억할 날을 표시한다. 아주 작은 손길이 오고 간 흔적이 칸칸이 담긴 12장을 넘기며 기념일을 표시한다. 
해마다 손길을 주고 받으면서 하루하루 칸을 메꾸지만 그 많은 손길 중에서 나는 잊을 수 없는 손길이 있다. 내 한계 밖에서 SOS를 쳤을 때, 두려움을 말 한 마디로 물리치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의 손길이다. 그는 매주 성당에서 만나지만 볼 때마다 고맙고 그 이름만 들어도 감사하다. 내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119에 실려간 후로 입원 퇴원을 하고도 나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식탁에서 다시 남편이 숟가락을 떨구더니 말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때 다급해서 종합병원 의사인 그에게 전화를 했다. 
 “.....한데 어떻게 해요?”
이 말 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접수를 대신 해 둘 테니 이웃도 부르지 말고 119를 불러 바로 오라고 했다. 가서 보니 뇌경색이 온 거였다. 병원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평생 건강하게 살던 사람에게는 너무나 두렵고 낯선 일이었다.  
연말에 나도 모르게 그를 보며 또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가 지나가면서 흘린 말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그 작은 손길인데.....이렇게 오래도록....” 하고 지나간다. 
베푸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일상의 손길이라도 앞이 캄캄할 때는 구세주의 손길처럼 고맙고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공교롭게도 내가 한 질문을 다른 누가 나에게 했다. 
“선생님 저 어떻게 해요?”
장애 여인이 장애 남자를 만나 둘이 사랑해 결혼했다. 결혼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뇌병변을 앓은 그 여인의 병증은 신체적 어려움보다 외골수라는 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며 급기야는 자해를 할 정도로 변한다. 그 둘은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최근에는 정부에서 보내주는 도우미의 혜택을 받고 있다. 많은 가사 중에서 자신은 설거지를 하는 정도인데 그것도 1시간 반이나 걸리고 건강이 약화돼 하루 중 일정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병원에 차츰 단기 기억력이 떨어져 나중에는 집에서 외출하기도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유일하게 일주일에 한번 복지관 글 쓰기 교실에 오는 것이 낙인데 이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데 나는 손길을 뻗을 수가 없다. 
그동안 나는 수시로 그녀에게 작은 손길을 뻗어봤지만 그 물음에 답을 줄 수가 없다. 친정 부모도 있고 시어머니와 남편도 있지만 그녀는 왜 나에게 그 질문을 했을까. 나는 그녀의 행동을 고칠 수가 없고 그녀의 환경에 관여할 수도 없어서 딱하다. “하느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요?” 나도 묻는다. 
그녀의 해는 언제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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