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카톡”
핸드폰을 본다. 딸이 메시지를 보낸다. “아침에 사무실에서 퇴직하는 사람 동영상 제작 음악이 웅장한 거 들리니까 옛날 아이맥스 봤던 기억이 생각난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구경하고 싶다.”로 시작했다. 이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키는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집중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이는 오빠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어 함이기도 하다. 
 밤 10시 36분에서 11시 9분 사이에 대화가 200개가 올라왔다. 결혼한 자식들이 부모와 함께 메신저 채팅창에서 공개토론을 벌이는 광경도 마음에 들고 언로가 트여서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반론도 펴고, 공감도 하고 응원도 하고 강한 저항도 표출됐으나 그것마저도 할 수 있어서 좋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자식들의 생활언어를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아들과 딸이 같은 직종의 일을 하고 있어서 가족의 소통 정도가 높다. 어느 날에는 직업 이야기가, 어느 날에는 직업 특성상의 애환이 올라오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말을 서두로 영어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이어진다. 아들은 큰 아이가 중1이고 딸은 초등학교 3년생인데 교육이 서서히 강도 높게 압박해온다는 이야기다. 수학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접근해 효과적으로 교육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들, 관심사 1위인 시간대를 지나는 내 자식들이 힘겨워 보여도 내색하지 않는다.  
부모의 경험이 적용될 것 같지 않은 현실이라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가 슬쩍 끼어들기도 했다. 내 자식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리얼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기는 하나, 아무도 미래를 정확히 점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의견을 좁히기도 어렵다. 결국 경험을 토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결혼을 하면 인격분리, 재산분리, 주소분리가 원칙이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은연중에 섞이고 있다. 직업군에서 성공적으로 마감을 했다고 그 사람의 견해가 다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극히 부분적인 사실을 전체인 듯 단정하는 사고는 편협하고, 지극히 일부의 성공담을 표본 삼아 참고하는 것 또한 성공 확률을 보장받는 일이 아니기에 선택에는 항상 위험이 내포돼 있다. 정명훈의 등장으로 피아노 학원이 성하고, 이에리사의 등장으로 탁구장이 성업을 이루고, 박세리의 등장으로 골프장이 웃었다. 김연아의 신드롬, 방탄소년단의 세계 제패, 박지성의 축구 황제 등극, 손흥민의 골 소식에 이어 이제 박항서까지 솟아올라 요즈음 아이들의 꿈이 운동선수라고 하니 부모는 아이들을 어떻게 관찰하고 이끌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가 없을 것 같다. 한두 자녀를 둔 시대의 큰 고민거리다. 
이야기의 끝부분에 가자 슬금슬금 진실은 토로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되려면 돈 힘이 크다는 말도 등장했다. 좋은 줄 알면서도 발을 들이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조건을 갖춰 줘도 공부하는 사람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여건이 무용하게 된다는 것도 말하게 됐다. 
결코 멀지 않은 날, 우리 집 카톡 방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고갈까. “원서 썼니?” “무슨 과 지원했어? 문과야 이과야?” 이런 말을 그때도 할 수 있을까. 
서서히 자식들로 해 부모의 자존심이 건드려지기도 하고 자식을 통해서 힘을 얻기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부모의 경쟁구도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세상 풍경이니 별 도리가 없다. 어려서는 부모가 반 팔자고 나이든 부모에게 자식은 면류관이라 했으니 2세를 잘 키워보려는 욕망은 본능에 속할 것이다. 웃어도 좋고 숟가락 소리 함께 내도 좋다. 힘들고 불합리하다고 투덜거려도 좋다. 자식의 한숨소리도 엄마니까 들을 수 있다. 이 땅의 역사를 아는 어른이니까. 수많은 다른 엄마의 고통소리가 들리니까 내 자식의 말은 내 가슴으로 품고 만다. 대화 중에 모두가 사고와 감정의 찌꺼기를 분리 수거하는 중일 거라고 이해하고 자식들 가슴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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