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칼럼 ⑭>>집건법과 공주법의 발전방향

김영두 교수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미국·유럽은 하자보수 청구가 손해배상 청구에 우선
하자보수를 원칙적 구제수단으로 삼기 위한 논의 필요

아파트에 하자가 발생했고 그 하자의 보수가 가능하면 입주자들은 하자의 보수를 청구하거나 하자를 보수하기 위한 비용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구제수단은 하자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입주자는 하자의 보수나 손해배상 중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구제수단을 행사하면 된다. 
사업주체가 하자를 보수해 주겠다고 말하더라도 입주자는 이를 거절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반대로 사업주체가 손해배상을 해 주겠다고 하더라도 입주자는 하자의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사업주체가 하자의 보수를 거절하는 경우에 억지로 하자를 보수하도록 하는 것은 별로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 대신에 하자보수를 청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자보수의 청구나 손해배상의 청구나 하자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는 면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 두 가지 구제수단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사업주체가 적절하게 하자를 보수했다면 하자가 제거된다. 그러나 입주자들이 하자보수를 위한 비용을 배상받더라도 반드시 그 돈을 하자의 제거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발생해 다친 경우에 치료비를 배상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돈을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비용으로 지출하지 않고 유흥비로 지출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파트에 하자가 발생해 손해배상으로 돈을 받은 경우에도 그 돈을 하자보수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돈을 받은 입주자는 좋겠지만, 그 이후의 매수인이 하자의 존재를 몰랐다면 하자로 인해 또 다른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자로 인한 건물의 노후화나 안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둘째, 통상적으로 사업주체가 직접 하자를 보수하기 위한 비용보다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액수가 큰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사업주체가 하자를 보수하기 위해서는 1,000만원의 추가비용이 필요하지만, 제3자에게 하자를 보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1,000만원을 훨씬 초과하는 비용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사업주체는 노하우를 갖고 있고, 하자보수에 있어서 자신들의 직원을 활용하거나 기존의 자재를 활용할 수 있지만, 하자보수 업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주체가 성실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사업주체가 하자를 보수하는 것이 손해배상을 받아 그 돈으로 제3자에게 하자를 보수하도록 하는 것보다 사회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셋째, 공용부분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 일부 입주자는 하자보수를 원할 수 있고, 또 다른 입주자들은 손해배상을 원할 수 있다. 물론 입주자가 개별적으로 공용부분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한지 논란이 있지만, 입주자의 일부가 집단적으로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이렇게 되면 하자의 보수를 원하는 입주자들은 하자보수를 청구할 수 없게 된다. 하자의 보수와 손해배상을 동시에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용부분의 하자에 대해서 손해배상과 하자보수에 대한 입주자들의 의견이 나뉘게 되면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이 하자보수보다 더 우선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전에 먼저 하자의 보수를 청구하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실제로 독일민법에 따르면 공사도급계약에서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에게 상당한 기간을 정해 하자의 보수를 청구해야 한다. 그 기간 내에 하자를 보수하지 않거나, 하자의 보수를 거절하는 경우에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유럽에서 통합민법전을 만들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모델법(보통 ‘Draft Common Frame of Reference’라고 부르며, 약자로 ‘DCFR’이라고 한다)에 따르면 하자가 있는 경우에 수급인이 스스로 하자를 보수하겠다고 말한다면 도급인은 하자를 보수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를 채무자의 추완권(right to cure)이라고 한다. 우리 법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결과다. 미국의 통일집합건물법(Uniform Condominium Act)에 따르면 수급인이 하자를 보수하기 위한 계획을 제출하고 그 계획에 따라 성실하게 하자를 보수한다면 입주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사실 독일법이나 유럽법이나 미국법의 입장이 좀 더 상식적이기는 하다. 다시 한 번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래도 하지 않는 경우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단순히 인지상정일 뿐만 아니라 계약법의 일반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 민법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반영된 조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눈 앞에 돈이 생기면 하자보수보다는 돈 자체에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하자보수를 청구하지 않고 곧바로 손해배상부터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하자의 제거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법의 원칙을 부당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제대로 공사를 하지 않거나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불성실한 사업주체나 공사 수급인이 많은 현실을 고려하면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 의미 없는 하자보수의 기회를 주도록 하는 것은 입주자에게 번거롭고 불필요한 절차를 요구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또한 불성실한 사업주체나 공사 수급인이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부실한 하자보수로 인해 입주자가 2중, 3중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아파트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에 먼저 하자보수를 청구하도록 하고, 하자보수가 이뤄질 수 없거나 하자보수를 하지 않은 경우에만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법리의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발전해 나가고, 성실하게 행동하는 계약당사자들이 더 많아진다면 하자보수가 입주민의 원칙적인 구제수단이라는 법리의 도입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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