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를 짝사랑한 여인이 있다. 돌아가신 의사 아버지의 비법을 이어받아 왕의 병을 고쳐준 덕분에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여자에게 애정이 없었던 남자는 마지못해 혼인은 하지만 결코 함께 자지는 않겠다며 멀리 떠나 버린다.
적극적이고 재능도 많은 여자는 남자를 뒤따라간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여성을 좋아하는 남자 몰래 주위의 도움을 받아 잠자리를 바꿔치기해서 임신에도 성공한다. 마침내 남자는 여인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평생의 사랑을 약속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의 줄거리다. 워낙에 명작이 많은 대문호다 보니 이 작품은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지만, 제목만큼은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의 글과 연설에 인용되고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은 때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진해서 좋은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성공지상주의’를 상징하기도 하고, 또는 이런 속물적 사고방식을 비아냥대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과정이 아무리 훌륭해도 좋은 결말을 이루지 못하면 그 뜻이 퇴색하고 만다’는 경구로도 많이 활용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은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말이고, 결국 ‘끝이 나쁘면 모든 게 허사’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난주 강릉에서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트리려는 고3 학생들이 추억여행을 떠났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화면에 잡힌 보일러 연통은 본체와 분리된 채 비스듬히 얹혀 있다. 배관이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원인은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조임밴드나 실리콘 마감도 없이 대충 놓여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날림공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식 온돌문화는 보일러의 등장으로 한층 편리하게 현대화됐다. 입식생활만 하다가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언 몸을 지져본 외국인이라면 누구든 엄지를 세워 칭찬하는 민족의 자랑거리다.
온돌난방을 시설하기 위해선 바닥에 단열재와 잔자갈, 석분 같은 축열재를 깔고 엑셀파이프나 동파이프로 난방 배관을 촘촘하게 설치한 다음 와이어매시로 고정하고 그물망을 덮어준 후, 상부미장으로 방바닥을 평평하게 다진다. 그다음 보일러실에 본체를 달고 수도배관, 난방배관, 환수배관, 온수배관, 연료배관들을 각각 연결한다. 각 배관에 대한 밀봉과 보온작업도 필수. 마지막으로 외부로 뺀 연통배관을 본체와 체결하면 마무리되는 것이다. 연통도 급기와 배기가 따로 있으니 이들의 위치와 빗물유입 방지를 위한 하향각도까지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한다.
이토록 지난한 작업을 다 해놓고도, 마지막 연통배관을 엉터리로 설치하는 바람에 어린 생명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추억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이 참사로 펜션 주인과 보일러 설치업자는 처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그들이 당할 신체적 재산적 손실보다 더욱 극심한 건 자신들로 인해 새파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죄책감일 것이다. 귀찮아서, 약간의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저지른 사소한 잘못이 본인들은 물론 여러 사람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을 안겨주고 말았다.
사실 이런 식의 사소한 실수는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올 초 서울 모 아파트에서 불이 났는데 소화전이 작동하지 않았다. 조사해 보니 동파 방지를 이유로 연결밸브를 잠그고 물을 모두 빼버린 것이 드러났다.(관련기사 3면) 이 사고로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보온재와 열선으로 보완해야 할 일이 - 단순하게 물을 끊어 버림으로써 - 큰 사고로 이어졌다.
사소함이 생명을 좌우하고, 재앙은 작은 실수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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