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섭지코지에는 바람이 꽃을 피우고 사람들은 바다 위를 걷는다

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처럼 풀처럼 시련을 온몸으로 견디며 삶을 느끼려 했던 두모악 갤러리의 사진. 
그곳에서 배어 나오던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의 환상곡’ 같은 풍광은 잠시 훌쩍 떠나는 가벼운 충동으로 제주도를 다시 찾게 한다. 
 

 

#여행에서 꿈을 찾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권투선수를 하던 젊은이는 세계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에 모더니즘 건축으로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흥미를 느껴 건축공부에 빠져버린 청년은 수년간의 여행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와 건축연구소를 차린다. 당시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단순성·실용적인 모더니즘의 건축이 일상성·다원적인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길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청년은 퇴색돼 가던 모더니즘 건축에 자기의 철학을 추구했다. 그것은 동양의 자연관조사상인 비, 바람, 물 등의 자연 요소들을 해당되는 공간에 적합하게 수렴해 현대적으로 추상화했다. 주위 환경과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해 건축에 자연물을 끌어들여 절제와 여백, 간결함으로 자연이 들어 올 수 있는 공간을 내어 줌으로써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그는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자신이 있는 장소와 시간을 느끼고, 서로 만나서 함께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건축이라고 규정한다. 그가 바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 ‘지니어스 로사이’ 유민미술관 개관

#땅의 수호신 Genius Loci
휘닉스·섭지코지 뒤편으로 억새 오솔길을 오르면 갯쑥부쟁이와 해국이 푸른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성산일출봉이 바로 눈앞이다. 겨울이 오는 대지 위에 파란 유채잎은 햇빛에 반짝이는 하얀 등대를 배경으로 노란 봄의 기억을 담아가고 있다. 바람이 지나가다 잠깐 쉬어가는 ‘바람의 언덕’. 그곳에서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니어스 로사이를 만난다.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는 땅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나지막하게 땅으로 내려앉은 듯한 건축물이다. 지니어스 로사이에는 한라산 백록담을 상징하는 연못과 지대가 점점 낮아지며 중산간지인 현무암으로 이뤄진 돌의 정원, 송엽국이 피어 있는 여인의 정원이 해안으로 이어진다. 제주의 상징인 억새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제주의 지형을 걸으며 느낄 수 있도록 돼 있고 벽면으로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담아낸다.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지니어스 로사이’에 유민미술관이 개관했다. 전시 설계를 덴마크 건축가인 요한칼슨이 맡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2018년 인사이드 월드 인테리어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인테리어(The World Interior of The Year)’로 선정됐다. 
성산 일출봉을 내다보고 있는 이 미술관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야외 정원과 ‘영감의 방’ ‘명작의 방’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 ‘램프의 방’ 등 4개의 전시실에 아르누보 유리공예 대표작을 소장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공예·디자인 운동을 일컫는다. 땅으로 향한 지니어스 로사이 옆으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로 두 손을 들어 올린 것 같은 역시 안도 다다오 작품인 ‘그라스하우스’가 해돋이 명소와 연결돼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정원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 ‘본태 박물관’ 한국의 담장과 물이 만나 하늘을 담아내다
▲ 안도 다다오 설계 ‘본태박물관’ 건물 사이로 산방산이 들어앉다

#아름다움을 찾아서 Bonte
중산간 1115도로를 가다보면 핀크스GC가 있다. 핀크스 리조트 단지 안에는 포도송이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지붕 아래 제주의 전통가옥을 옮겨놓은 듯한 포도호텔을 설계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재일교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의 작품들이 있다. 재단법인 방주가 운영하는 방주 교회다. 지금은 교회의 분쟁으로 잠시 문을 닫고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지만 물 위로 투영된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듯 물과 빛이 주변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축의 진미를 맛본다.
주변에는 제주 중산간 상천리에 자리한 본태박물관이 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프랑스어 bonte는 ‘아름다움을 찾아서’, 한자어 本態는 ‘본래의 형태’를 의미하는 인류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나무와 묘지석이 있는 정원과 한국의 담장이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과 조화를 이룬다. 담장 위에서 떨어지는 물과 수평으로 흐르는 물이 미로 같은 건축물 사이로 하늘까지 담아낸다. 건축물 사이로는 산방산이 보이고 옥상 위에 피어 있는 꽃잎 위로는 바다와 산방산이 떠오른다. 전시실에는 불교의 온갖 예술품에서부터 피안으로 가는 동반자인 우리 상례문화를 보여주는 꼭두인형까지 다채로운 전시품들이 있다.

▲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실에 있는 노란호박 오브제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실에는 노란호박 오브제가 있다. 물방울 전시실은 천장과 사면은 거울로, 발밑으로는 물이 어둠 속에서 온갖 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물방울들의 세계를 경험한다. 또한 전시실에는 살바도르 달리, 페르낭 레제, 이브 클라인, 백남준 등 현대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만난다. 전시실은 작은 공간으로 나눠 정원을 걷기도 하고 창문으로 보이는 외부 공간에서 들어오는 빛을 느낄 수 있어 여유로운 감성으로 둘러볼 수 있다. 
마지막 전시실을 나오면 작은 카페가 있어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마시며 햇빛이 억새풀꽃 위로 내려앉은 호수 위의 휴식으로 마무리한다. 돌아가는 산책로에는  로트르 클라인, 자우메 플렌사의 작품이 배웅을 한다. 

제주도는 세계자연공원, 세계지질공원, 세계생물권보전지역의 유네스코 3관왕을 수상했다. 특히 세계 7대 자연유산으로 선정된 동기는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이 모나지 않게 어우러진 요소가 가장 크다. 획일적인 건물들과 여유 없는 공간에 갇힌 도심을 떠나 건축과 문화가 어우러진 제주 여행은 국내여행의 한계를 극복하는 문화여행으로 여유를 갖게 한다. 
커피 한 잔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듯 낮게 드리운 건축물에서 만난 공간의 여유는 나를 내려놓는 잠깐의 행복이 아닐까.

※지금 제주 성산 커피박물관에서는 프랑스 레보드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ères)’, 파리 ‘빛의 아틀리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전시를 프랑스 이외 국가에서는 최초로 제주에서 만날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서거 100주년을 맞아 클림트의 작품들로 구성된 ‘빛의 벙커:클림트’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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