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선충당금 없는 장기수선계획 이행? ‘어불성설’
과태료 부과 예고 받은 아파트…관할관청 탁상행정에 억울함 호소

국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장기수선충당금 적립률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장기수선계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공동주택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국토교통부도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장충금이 제대로 적립되지 않아 제때 장기수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6년경 LH의 연구용역을 통해 장충금 최소 적립기준과 연계한 합리적인 장기수선제도 개선방안 마련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주택관리업자)가 최근 관할관청으로부터 ‘장기수선계획 미이행’ 등으로 인해 각 700만원의 과태료 부과 처분 예고통보를 받았다. 
이에 따르면 관할관청은 “공동주택관리법 제29조에서 공동주택의 공용부분에 대해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한 취지는 공동주택 공용부분 주요 시설의 노후화는 신체의 안전 및 생활의 안정을 위협하게 되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건축물의 수선·유지에 필요한 소요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미리 주요 시설의 수선계획을 세움으로써 공동주택 공용부분 주요 시설을 적기에 교체·보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A아파트의 경우 수립 또는 조정된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주요 시설을 교체하거나 보수하지 않았다”며 “이는 동법 제29조 제2항에 따른 장기수선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제102조 제2항 제4호 등에 따라 입대의와 관리주체에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아파트 관리사무소장 B씨는 “공동주택 관리현실을 외면한 관할관청의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하면서 본지에 참담하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나섰다. 
현실에 맞지 않은 장기수선계획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답보상태다.  
B소장은 “애당초 장기수선계획이 제대로 세워져 있는 상태에서 거기에 적합한 장충금을 입주자에게 징수해 적립이 이뤄졌다면 장기수선계획 미이행으로 인한 처벌을 받아도 마땅하지만, 적정한 장충금 적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관리현실 속에서 장기수선계획을 그 시기에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은 관할관청이 관리현실을 도외시한 채 범법자만을 양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3년에 포함된 승강기교체공사
2015년에 완료해도 과태료 부과대상? 
관할관청이 지적한 장기수선계획 미이행 항목은 대표적으로 승강기 교체공사(2013년도)와 배관교체공사(2016년도). 2013년도 장기수선계획 조정은 B소장이 부임하기 이전 관리소장이 한 것. 
2013년 7월 장기수선계획에 포함된 승강기 교체공사의 경우 2013년도 10월 말경부터 A아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B소장이 입주자 동의 과정 등을 거쳐 2015년 1월경에야 비로소 공사를 완료했다. 과태료 부과 사전 통보시점인 2018년 10월 말경에는 이미 승강기 전면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관할관청은 단순히 장기수선계획상 2013년도에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기수선계획 미이행으로 보고 과태료 부과 대상에 포함시켰다. 
B소장은 “이 아파트는 1989년에 준공해 승강기는 2013년도 당시 24년째 사용 중이었고 내용연수 15년을 감안, 관할관청의 해석대로라면 2003년도에 교체를 했어야 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서 “2013년도에 승강기를 교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대상이라면 2013년 이전의 모든 관리주체 또는 입대의도 처벌대상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배관교체공사 또한 마찬가지다. B소장은 “계획대로라면 2016년도 공사계획안에 들어있는 급수급탕, 난방, 소방배관 교체공사 또한 입주 후 15년이 경과한 2004년도에 100% 교체해야 하겠지만 이 지역 어느 아파트도 30년이 가까운 현재까지 4가지 배관을 모두 교체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면서 “겨울철마다 각종 배관파열사고가 속출하고 녹물이 발생해도 장충금이 없어서 현재에 이르렀다”며 “30년간 장충금 과소적립을 고집해온 입주민 선택의 결과를 관리주체와 입주민 대표에게만 돌리는 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A아파트가 관할관청의 공동주택관리 실태조사를 받게 된 데는 배관교체공사 추진 과정에서 비롯됐다. A아파트는 2,000가구가 넘는 단지로 입주자 동의절차를 밟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배관교체공사에 대한 동의를 받는 데만 5개월 넘게 소요된 것. B소장은 투명한 공사 추진을 위해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회의안건에 부쳤고 원칙적인 방법으로 진행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B소장은 “배관공사 또한 2013년도부터 장기수선계획에 편성했다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장충금 부족으로 공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2017년 1월에 가서야 급수급탕배관에 국한해 교체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입주민 동의를 받고 어렵게 설계까지 마쳤지만 결국 현재까지도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입주민 간 다툼이 지속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아파트의 급수급탕 배관교체공사는 2017년 11월 입대의 의결과 입주자 동의 과정을 거쳐 설계용역 완료 후 수도사업소와 관할관청의 검토와 전문가 자문까지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사업체 선정과 관련해 한두 명의 민원 제기로 인한 동대표 간 갈등으로 급수급탕 배관교체공사마저 중지된 상태.   
A아파트의 최근 5년간 장충금 부과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151.25원(㎡당) ▲2014년과 2015년 196.82원(㎡당) ▲2016년과 2017년 220원(㎡당)으로 2017년 기준 장충금 예산 대비 부족액은 50억원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관할관청은 2016년 2월경 아파트 단지에 보낸 ‘장충금 인상 협조요청’ 공문을 통해 2015년 말 기준 관내 공동주택(170개 단지) 장충금 평균 적립금액은 1㎡당 157원으로 서울시 권장 장충금 적립금액인 465~518원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하면서 노후화가 심하게 진행된 공동주택이 많은 관계로 수선유지비용 증가에 따른 장충금 적립 금액 인상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실제 대부분의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장기수선계획을 제때 이행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한 장충금이 제대로 적립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관할관청도 이미 자인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B소장은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당 아파트의 경우 부정 비리가 아닌데다 시정명령만으로도 입주자들의 경각심을 고취해 장기수선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만 어느 단지는 시정명령에 그친다”며 “처분기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년이 넘는 관리경력의 B소장은 “불합리한 장기수선제도로 인해 그동안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관리종사자들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며 “현실을 외면한 행정청의 과태료 부과 행태를 근절하고 현실을 반영한 장기수선제도 개선으로 선량한 관리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근에 있는 B아파트도 장기수선제도와 관련해 관할관청과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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