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성 규  한국주택관리연구원 원장

 


최근 국민은행 통계자료에 따르면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 Price to Income Ratio)’ 지수가 올해 9월 서울에서 13.4를 기록했다. PIR은 집값이 연 소득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지표다. PIR이 13.4라는 의미는 서울의 중간 소득의 가구가 13년 동안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야 서울에 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통계자료는 보통사람들이 자력으로 내 집을 구입하기란 실현하기 매우 힘든 꿈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주거분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아파트 거래가격을 보면 서울 강남권의 아파트 가격은 비 강남권의 2배를 상회한다. 그리고 수도권과 여타 지역과의 가격격차도 크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과의 주거격차는 말할 필요도 없다. 주거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어 적절한 처방과 주거정책의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주거상황에서 싱가포르의 주거정책 프로그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부패가 없는 나라로 유명하며 부패인식지수는 아시아에서 제일 높아 거의 북유럽과 동일한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시민들은 준법정신이 매우 높다. 또한 싱가포르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분야는 주거정책이다.
싱가포르 국민의 약 80%는 주택개발청 (HDB: Housing & Development Board)에서 공급한 공공주택에서 살고 있고 자가 점유율이 91%에 달한다. 1960년대 심각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개발청을 설립했고 공공아파트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주거정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 아파트 투기는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공공주택 소유자가 집을 팔려고 할 때는 반드시 집을 주택개발청에 되팔도록 하는 주택전매금지를 겨냥한 주택환매제도(약칭 환매조건부분양)를 시행했다. 시가로 집을 되사들인 정부는 이 집을 입주 대기자에게 되판다. 공공부문의 분양주택은 반드시 정부에 되팔게 함으로써 전매차익이나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최근에는 공공주택 거주자가 집을 팔려면 매수자와 매매가격을 결정하고 반드시 주택개발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일정 기준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둘째, 싱가포르는 맞춤형 주거정책을 우선적으로 실행한다. 신혼부부, 생애 최초 집 마련 자에게는 공공주택 입주의 우선권을 준다. 그리고 어린 자녀를 가진 가정이 부모가 거주하는 동네 혹은 부모 집 2㎞ 이내 주택을 분양받을 경우에는 신규주택 분양의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러한 세밀하고 주거현실을 감안한 정책은 맞춤형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민간 주택공급 및 분양에는 주택분양가격을 규제하는 등의 시장 간섭은 없다.
셋째, 싱가포르 국민은 평생에 2번까지만 분양기회를 준다. 주택개발청이 공급하는 신규 공공주택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 저렴한 주택이기 때문에 골고루 기회를 부여하는 기회평등의 원칙을 고수한다. 구입조건에 따라 소득기준, 재구매 유무, 의무거주기간 등이 차등 적용된다.
위에 언급한 제도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주거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전 국토의 80% 이상을 국유화했다. 이러한 강력한 토지수용법 적용으로 토지 투기나 가수요를 차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공부문에서 주택을 공급한다는 조건과 배경은 한국과는 상이하다. 그리고 국토면적, 전체 인구, 정치 및 경제 시스템 등이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싱가포르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적지 않다. 먼저 맞춤형 주거프로그램을 실행해 주거 빈곤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공정한 배분적 형평성을 지니고 있다. 공무원의 부패인식지수가 높아 매우 청렴한 주택행정을 펴고 있음이 제도적인 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주거정책은 매우 중장기적이고 주민의 주거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주거정책 프로그램이 변경된다. 정권차원의 단기적 주거안정프로그램이 아닌 중장기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사회통합형 주거사다리를 마련한다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계획이 제대로 실행돼 국민의 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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