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키나와의 바다

연일 추워지는 날씨와 날로 심해지는 미세먼지 탓에 선뜻 문밖을 나서기가 망설여지는 요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집안에만 있자니 따뜻한 햇볕과 맑은 공기가 그립다 못해 간절해진다. 멀리 가기는 싫고, 가까이에서 찾자니 마땅히 갈 만한 데가 없을 때 문득 생각난 곳이 ‘오키나와(沖繩)’였다. 맑고 깨끗한 바다와 푸른 하늘이 눈부신 ‘동양의 하와이’.
일본의 유일한 아열대 섬인 오키나와는 류큐제도에 자리한 섬이다. 소속은 일본이지만 지리적으로는 대만에 더 가까울 정도로 본토와 동떨어져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본섬의 북쪽은 산과 밀림으로 이뤄져 있고, 남쪽은 바위가 많은 구릉 지대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섬에 상륙하려는 연합군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군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일본 영토에서 벌어진 최초의 전투다. 81일 동안 계속된 전투는 당시 이 지역 건물의 90% 이상이 파괴되고 주민의 3분의 1이 사망했을 정도로 치열하고 참혹했다. 일본의 패망 후 오키나와는 미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온전히 반환된 것은 1972년에 이르러서다. 

 

▲ 나하시 국제거리

오키나와에서 느끼는 미국의 향기

오키나와 현청과 나하국제공항이 있는 나하시는 오키나와 여행의 출발점이다. 나하시 중심에 조성된 국제거리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국제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본 본토식, 오키나와 전통식, 미국식 문화가 뒤섞여 있어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닌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국제거리는 ‘기적의 1마일’이라고도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폐허로 변했던 것을 전후 대대적인 복구 작업을 거쳐 짧은 시간 내에 다시 발전시켰기에 붙은 별명이다. 
1.6㎞의 짧은 거리에는 대형 쇼핑센터, 일본 전역에 체인을 둔 유명 잡화점, 시샤(오키나와를 수호하는 상상의 동물)를 주렁주렁 달아놓은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호텔, 극장, 현지 주민을 위한 공설 재래시장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답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사람들이 붐빈다. 거리를 왕복하는 데는 1시간 반이면 충분하지만 구석구석 제대로 둘러보려면 반나절도 모자란다. 

▲ 아메리칸 빌리지
▲ 아메리칸 빌리지의 상징 대관람차

미군이 상주하면서 오키나와에는 자연스레 미국식 문화가 퍼져나갔다. 특히 식습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오키나와의 어패류 소비량은 일본 전국 평균의 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반면에 스테이크의 소비량은 굉장히 높다. ‘오키나와에서는 회보다 스테이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미군 주둔의 영향이다. 실제로 국제거리를 걷다 보면 스테이크 가게가 여기저기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두 집 걸러 한 집이 스테이크 가게다. 오키나와식 스테이크는 철판 스테이크다. 뜨거운 철판 위에서 기름과 함께 육즙이 지글지글 끓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오키나와 중부에는 ‘아메리칸 빌리지도 있다. 정식 명칭은 미하마 타운 리조트 아메리칸 빌리지로 1981년 반환된 미군 비행장 용지에 미국 샌디에이고의 씨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삼아 계획적으로 조성한 도시 리조트다. 수입 잡화점과 레스토랑, 라이브 하우스, 바가 밀집해 있는 모습은 ‘오키나와의 작은 미국’이라고 불릴 만큼 이국적이고 낭만적이다. 
이런 분위기에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상징인 대관람차도 한몫한다. 일본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대관람차는 낮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밤이면 화려한 조명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류큐 왕조를 아시나요?

미국과 일본이 오키나와에 발을 딛기 전 섬의 주인은 ‘류큐 왕국’이었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풍습을 지닌 엄연한 독립국가였던 왕국은 1608년 사쓰마 번(지금의 규슈지역)의 침략과 1879년 메이지 정부의 ‘류큐 처분’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키나와에서 류큐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슈리성이 대표적이다. 슈리성은 14세기 번영했던 류큐 왕국의 왕성으로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의 슈리성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된 것을 1972년부터 1992년까지 20년에 걸쳐 재건한 것이다. 복원된 슈리성은 류큐의 독자적인 건축양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한·중·일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번영을 누렸던 류큐 왕국의 화려한 역사를 짐작해볼 수 있다. 슈리성 터는 2000년 후반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코끼리 모양으로 깎여나간 절벽과 아름다운 석양으로 유명한 명승지 만좌모에도 류큐 왕국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만좌모라는 이름은 ‘만명이 앉을 수 있는 초원’이라는 뜻인데 18세기 류큐 왕국의 쇼케이왕이 이곳을 보고 절찬하며 말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모’라는 단어도 들판을 가리키는 류큐의 단어다. 

 

▲ 만좌모

소박해서 매력적인 오키나와의 바다

긴 역사 동안 항상 고단하기만 했던 오키나와. 하지만 현재의 오키나와는 1인당 국민소득이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이다. 일년 내내 20℃를 웃도는 기온과 맑고 깨끗한 바다, 야자수와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모습 덕분에 휴양지로도 명성이 높다. 
일본인들이 하와이를 유난히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하와이와 같은 위도에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키나와는 ‘동양의 하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한다. 화려한 하와이의 해변을 생각하고 오키나와에 간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깨끗하고 정돈된 해변이지만 드라마틱한 재미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만 하기엔 이르다. 
오키나와 바다의 매력은 오히려 그런 소박함에 있다. 해변을 향해 가는 길목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낮은 지붕을 얹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들, 그리고 주민들이 정성 들여 꾸며둔 장식들이 오키나와의 바다를 특별하게 만든다.
화려함으로 가득한 ‘동양의 하와이’가 아닌 소박한 기쁨이 넘쳐나는 ‘하나뿐인 오키나와’를 상상하고 간다면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오키나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길    =인천에서 오키나와까지는 약 2시간 15분이 소요된다. 여러 항공사가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모노레일인 유이레일과 버스를 이용해 여행할 수 있지만 주요 관광지 간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렌터카를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차량을 빌릴 때는 국제운전면허증과 한국에서 발급한 운전면허증을 모두 소지해야 한다.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오키나와 일일 투어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오키나와 EXPO 해양공원   =1975년 개최된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국영공원으로 고래상어와 쥐가오리를 비롯한 수백여 종의 해양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추라우미 수족관과 돌고래 쇼 공연장, 해양 문화관 등 다수의 시설이 위치한다. 
추라우미 수족관 홈페이지 http://churaumi.okinawa/kr/

☞오리온 해피 파크   =증류식 소주인 아와모리와 함께 오키나와 대표 술로 꼽히는 오리온 맥주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견학과 시음이 포함된 무료 투어 프로그램을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s://www.orionbeer.co.jp/ko/

☞오키나와 소바   =오키나와의 소바는 메밀가루를 전혀 넣지 않고 밀가루만으로 면을 만든다. 생김새는 우동면을 닮았지만 쫄깃한 우동면과 달리 뚝뚝 끊어지는 식감이다. 
돼지 뼈와 가다랑어포를 함께 넣고 끓여서 뒷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고명으로는 삼겹살이나 갈비가 올라간다. 오키나와 전역에서 맛볼 수 있다.

 

이 채 영  여행객원기자 
여행비밀노트(http://chae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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