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하늘이 맑고 단풍이 고운 계절이 되면 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미친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역사와 가치 있는 발전에 대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더 깊이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고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나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온 호주의 한 가족 여행기도 감동적이었다. 
아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아파서 본국 호주로 들어가 치료를 하게 됐다. 그가 퇴원하면서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에 부모는 본가로 들어온다는 뜻인줄 알고 반가워했는데, 한국으로 간다는 말에 어머니는 안타깝고 서운해서 눈물 바람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이역만리 서울로 다시 보냈다. 이제는 한국이 자기 집이 돼버린 아들을 만나러 온 아버지의 여행기다.
 여행 도중 내내 잊히지 않게 “너를 사랑하고 네가 있는 나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싶고, 아는 만큼 공감하게 된다”고 피드백을 해주며 아들에게 행복감을 심어준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본 곳을 추천하면 아들의 발자국을 더듬듯이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으며 마치 아들이랑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기록물을 남긴다. 언제라도 ‘그때, 그곳’ 하면서 대화할 준비를 한다. 행복한 추억 만들기를 한다. 그 아버지를 보고 세상 어느 나라 부모건 그 가슴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부드럽고 자상하게 경청하고 자신의 견해를 주입하려고 들지 않는다. 선택이 엇갈릴 때는 민주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최대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다. 취향이 다른 딸을 위해 각기 다른 하루를 배려하고 함께 와 ‘따로’를 즐길 줄도 안다. 충분히 생각과 정을 나눠 주는 데도 억지스럽지 않다. 세대 간 조율이 가능한 어른이 보기 좋았다.    
나는 그들의 여행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 봤다. 양보와 선택과 배려가 화면마다 진하게 배어 나온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대화가 풍성하다. 감성이 풍부해 표현하기를 꺼리지도 않는다. 아들 딸과 상호 존중을 하면서도 양방통행이 가능한 감성 여행기다.  
 그는 도시 한복판에 맑은 물이 흐르고, 새가 날고, 사람들이 쉴 곳이 돼주는 서울의 청계천을 명소로 꼽는다. 고궁의 건축물을 즐겨 감상하며 자연 친화적 마인드를 가지고 여행을 하기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들 나라에는 세월이 밴 흔적이 없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마지막으로 의상대에서 일출을 보며, 본 중에 최고라는 찬사를 남기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이별의 시간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이별은 항상 서운하다. 아주 가도 서운하고, 오랫동안 보지 못할 것 같아도 서운하고, 내일 볼 것이라도 서운할 때가 있다. 좋은 것은 곁에 두고 싶은 성정을 말 없이 잘 드러낸다. 거리를 극복하는 것은 관심과 사랑이며 기록물은 자주 돌려보게 될 것이다. 자식이 있는 곳이니까.    
그들은 돌아가면 자기 아들과 함께했던 장소를 기억하고 그리울 때마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이미 한국을 사랑할 것이다. 
91세 내 어머니는 도시의 10층 아파트에 산다. 낯선 사람 속에 섞여 불편한 것보다는 자식을 기다리며 혼자 사는 게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우리가 머물렀다가 올 때마다 대문 옆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을 흔든다. 훗날 이런 장면도 그리울 것이라고 예견하며 우리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듯 한다. 내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집으로 오는 길이 얼마나 가슴 무거운지 모른다. 대문에서 손을 흔들고 얼른 발코니로 가서 10층에서 창밖으로 손을 흔들고 먼발치로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내려다본다. 훗날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고 나면 우리는 10층을 올려다보지 못할 것 같다. 그리움이 어두움으로 남지 않게 감정을 다스리는데 그 호주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며 말마다 귀담아듣고 행동마다 눈여겨봤다. 헤어지면서 아들을 푸근하게 안아주더니 한 번 더 안는다. 또 한 품은 어머니 대신이라고 한다. “가면 그리울 거야”라고 한다. 
그쪽 부모나 이쪽 부모나 살아서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감출 수가 없는 뿌리의 감정이다. 참다가 터져 나온 말이 자식 귀에는 무겁게 들릴 수도 있다. 오고 가는 게 사람뿐인가. 성글다 못해 마지막 잎새를 달고 대롱거리는 나무를 보며 ‘너도 가면 그리워’라고 나지막한 톤으로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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