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의 땡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2001년 8월 초순. 초로의 백인남성이 충남 아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집짓기에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한국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찾아와 손을 잡았다. 그의 이름은 지미카터.
1976년 제39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1981년 퇴임 후 ‘카터재단’을 설립해 인권신장과 국제분쟁 조정에 뛰어드는 한편, 전 세계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결성된 해비타트 운동에도 참여했다. ‘지미카터 워크 프로젝트’란 이름을 내걸고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대패질을 해온 그가 한국에도 집을 지으러 온 것이다.
8월 6일, 아침 7시 30분.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연장들이 담긴 묵직한 가방을 메고 현장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능숙한 손놀림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취재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연신 사진을 찍자 “우리 부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하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근처 다른 현장에선 필리핀의 코라손아키노 전 대통령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퇴임 후 더욱 멋진 외국의 전직 대통령들 덕분에 ‘해비타트’란 말을 처음 접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찾아왔다. 인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네팔, 스리랑카, 몽고, 방글라데시, 부탄 등 9개국에서 온 28명의 방문객들은 ‘유엔 해비타트’와 국내기관이 주관하는 연수에 선발된 학자, 공무원, 활동가 등 도시개발 전문가들이었다. <관련 기사 1면>
‘민간 해비타트’가 빈자에게 직접 집을 지어주는 봉사단체라면, 1978년 설립된 ‘유엔 해비타트’는 도시화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 타파, 적정수준의 주거보장이 정부의 책임임을 선언하고, ‘모두를 위한 주거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며, 각국에 거시적 주거정책과 도시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국제기구다.
대주관 황장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문 자격자에 의한 체계적 공동주택 관리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말로 주택관리사제도를 소개하고 “이번 연수가 도시전문가들에게 최신 주택관리 동향 파악과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은 자타공인 ‘아파트 공화국’이다. 처음엔 사각의 칙칙한 회색 건물들이 개성을 좀먹고, 도시를 획일화시킨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한국이 발전시킨 편리하고 과학적인 첨단 주거형태를 지칭하는 긍정적 뜻으로 확장됐다.
개도국에서 도시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연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안락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아파트는 매력적인 모델이다. 수평확산이 아닌 수직확산은 대지면적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단지 안으로 녹지를 들여올 수도 있다. 관리를 잘해 슬럼화하지도 않는다. 대주관 견학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개도국 입장에선 비용과 환경 그리고 관리까지 감안할 때 한국의 주거모델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절대로 배워가선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투기다. 아파트가 ‘돈 놓고 돈 먹기’ 투전판이 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강력한 정책을 펴야 한다.
더욱 중요한 둘째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하는 ‘갑질’이다. 방문객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입주민에게 맞은 아파트 경비원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세계 최고수준의 공동주택 관리는 잘 배워가되, 한국만의 고질병 갑질은 절대불가다.
그들의 나라에선 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이 한껏 존중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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