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에 가기를 꺼린다. 절정기의 유명관광지, 야구장, 큰 폭의 세일장 등에 가면 사람들로 하여금 시달린 경험만 강하게 남아서 피하는 편이다. 풍경이 아무리 좋아도 줄 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볼썽사나운 광경을 자주 만나는 것도 불편하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 가면 경기를 마치고 흩어져 나올 때의 무질서에 어지럽고 세일장에 가면 물건이 너무나 많고 사람들 또한 많아서 피하는 편이다.
이러한 거부감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20대에 내장산 단풍이 좋다고 절정기에 갔다가 진하게 물든 단풍 나무 터널을 지나는데 사람과 차량으로 뒤엉겨서 진땀을 뺀 적이 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젊은 기운으로 인파를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한적함을 맛볼 수 있었으나 다시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단풍구경을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었던 기억도 세월이 무디게 만들면 다시 그리워지는 법, 남편의 갑장 친구들 부부 7쌍이 설악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단풍 든 잎은 더없이 고와 보인다. 그보다 더 고운 것이 사람들의 옷 색깔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행들이 나이가 들어서 저들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고 나의 옷 색을 보면서 찾으라고 꽃다홍색의 옷을 입었다. 어디서든  찾는 데 지장이 없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곳에 찾아든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물이 잘든 단풍이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높이 올라가 권금성을 관망하기로 했다. 여전히 사람들과 확성기 소리로 시끌벅적했으나 기억 안의 내장산 풍경과는 조금 달랐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탓인 듯하다. 
케이블카 앞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수필 속에서 만난 스토리가 살아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인 사이였던 남녀가 케이블카 안에서 만났다. 남자는 새 여인과 신혼여행을 왔고, 싱글 여인은 추억여행을 왔다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케이블카를 탔다. 줄 지어 타는 바람에 탈 때까지는 몰랐으나 타고 나서 창가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쳤다. 둘은 순간 표정이 얼어붙었지만 서로 반대편 창가에 서서 잠시도 뒤쪽을 바라보지 않고 내려서 각기 다른 속도로 흩어졌다. 저들 마음이 울긋불긋 단풍 들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장소에 얽힌 이야기는 그 장소에 가야 생각나는 법, 케이블카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순간, 남의 생각은 날아가고 우리는 타는데 집중했다.
내 곁에 초등학생의 어머니가 자꾸 아이를 밀어넣는다. 나는 90도로 몸을 틀어 자리를 만들어 그 아이를 세웠다. 그 아이 뒤에 선 아이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도록 안내를 하면서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세상 모든 엄마는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풍경이 좋고 자식이 웃을 때 행복하다. 이 모자 사이에 웃음이 피어나려고 하는데 시야에서 풍경이 사라졌다. 우리가 구름에 갇혔다. 
“학생아, 구름이 감옥이 됐네, 우리가 갇혔네.”
“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름이 지나갔다. 
“감옥문은 누가 열어준 건가?”
“.............”
“우리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한다. 그치? 자연의 힘으로만 구름 감옥을 나올 수 있다. 그치?”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예”하고 답을 한다. 그 아이 엄마의 얼굴도 환해졌다. 어느새 케이블카의 문이 열리고  우리는 가장 먼저 내렸다. 
나는 꼬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학생, 안녕. 나중에 글짓기 할  때 써먹어.”
“네.”
아이는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나는 그 아이의 깊이 숙였다 일어서는 모습에서 향내를 맡았다. 아이도 공감하니까 보답했다.  
이제 설악산 케이블카에 두 가지 이야기를 실어뒀다. 
그러나 설악산 비 소식과 함께 다시 잊힐 것이다. 평일 날 비가 와서 우리는 붐비지 않게 관광을 했고 단풍색이 고와서 금상첨화였다. 내년에는 봄에 가 보기로 산과 약속하고 돌아왔다.
천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안에서 우리는 어떤 인연과 만나서 낯 붉히는 일 없이 가게 될까 상상하니 이 또한 재미난 상상놀이가 된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