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장 석 춘  
서울 성북구 동행 활성화 추진위원
(행복코리아 대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도종환 ‘단풍드는 날’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이라는 시입니다.
올가을의 단풍도 절정을 넘어가고 낙엽이 쌓이고 있습니다. 흔히 가을에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아쉬워하고 슬퍼하면서 가을에 가지 말라고 애원(?) 합니다. 이런 노래도 있지요? 신계행의 ‘가을사랑’이라는 노래 가사는 “가을, 가을, 오면 가지 말아라” “단풍 일면 그대 오고, 낙엽 지면 그대 가네”라고 하면서 온통 가을을 이별과 헤어짐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엽은 그냥 의미 없이 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줄기에 수분이 많으면 얼어서 죽게 되므로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수분의 공급을 줄입니다. 그래서 나뭇잎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무와 나뭇잎은 영영 이별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낙엽은 겨우내 이불이 돼 나무가 얼지 않게 보호합니다. 봄이 오면 낙엽은 수분의 증발을 막아서 나무가 다시 새로운 잎을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퇴비가 돼 나무에게 영양을 공급해 꽃을 피우게 합니다. 즉 낙엽이 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처럼 버려야 할 때를 알고 내려놓은 때가 어쩌면 삶의 절정인지도 모릅니다. 
‘곱게 물든 단풍은 봄에 피는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있습니다.
‘방하착(放下着)’이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뜻의 불교용어입니다. 즉 ‘무소유’를 의미합니다. 무엇을 소유하는 것은 상실에 대한 불안감으로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해치므로, 소유와 집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서 많은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도 천하를 손에 쥔 사람도 죽을 때는 빈손이란 걸 알려주려고 죽기 전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밖으로 빼놓고 묻어주라”고 말했답니다. 
며칠 전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스님이 사용했다는 초라한 나무의자를 보고 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법정스님은 보람된 인생이란 ‘욕구를 충족하는 삶’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많은 것을 얻는 순간이 아니라 욕망을 버리는 순간에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은 그냥 늙어가기보다는 ‘인간의 향기를 풍기면서 익어가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가을이 깊어가고 낙엽이 쌓이는 이 계절에 낙엽을 밟으면서 단풍과 낙엽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나도 모르게 무거워진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곱게 물든 단풍잎처럼 익어갔으면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보고 나눔과 베풂 그리고 용서를 배우면서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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