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끝

사 설 한국아파트신문사l승인2018.11.28 11:14:26l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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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산층의 상징이 텔레비전과 냉장고, 세탁기였다면, 80년대엔 에어컨과 피아노, 그리고 아이들에겐 나이키로 상징되는 브랜드 운동화였다. 이때까지 ‘자가용’ 차는 극강의 사치품. 연인을 태우고 드라이브하는 모습은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면서 ‘마이카’의 꿈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국민차가 양산되고 찻값의 대부분을 빌려줬다. 도시 곳곳에선 아파트가 쑥쑥 솟아올랐다. 정치 사회적 상황은 엄혹했지만, 경제는 찬란했다. 가난한 사람도 배곯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겨울, 행복의 꿈들이 산산조각 났다.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수출이 막히고 경제가 멈춰 섰다. 물가가 치솟고, 기업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일등 신랑감으로 손꼽히던 대기업에서도, 난공불락 같았던 은행에서도 명퇴란 이름으로 실업자를 쏟아냈다. 망하지 않을 것 같던 기업의 부도가 거의 매일 뉴스를 장식했다.
1997년 12월, IMF는 그렇게 어둠을 몰고 저승사자처럼 찾아왔다. 고통은 서민을 먼저 덮쳤다.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투신하고, 자녀를 태운 차를 몰고 저수지로 돌진하고, 가족이 잠든 집에 불을 지르는 일이 벌어졌다. 희망가를 노래하던 세상이 지옥으로 돌변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억척같이 살아내고자 했다. 장롱 깊이 숨겨뒀던 금붙이를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정부는 밤낮없이 대책마련에 나서고, 국민도 정부를 믿었다. 결과는 ‘IMF구제금융 조기졸업’이었다. 1999년 경제위기 탈출을 공식선언하고, 2001년엔 빚도 모두 갚았다. 지구촌이 한국의 기사회생에 찬탄과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발한 신용카드가 부메랑이 돼 다시 경제를 강타했다. 카드대란을 겨우 넘기고 한숨 돌리나 싶더니 2008년엔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패닉에 빠뜨렸다. 덕분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악랄한 선진국들의 사기극이었는지 깨닫게 됐지만, 아직도 세상은 여파를 다 극복해내지 못하고 있다. ‘거대자본’은 지위를 더욱 강화한 반면 ‘노동’은 손발이 잘려나갔다.
가난의 비정한 칼날은 어린아이에게 더욱 가혹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8~28세 청년 10명 중 3명은 아동기에 가난을 경험했으며, 6년 이상 장기빈곤을 경험한 청년의 68.8%는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 경험이 없는 경우는 79.3%가 대학에 진학했다. 장기빈곤 경험 청년층의 직업은 일용직 노동자가 가장 많다.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소득자는 86.7%가 미혼이고, ‘고용주’가 된 청년의 70.8%는 결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대상 청년들이 IMF-카드대란-세계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태어나고 자랐다. 중산층 언저리에 있던 부모들이 파산하고 실직당하면서 많은 아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빈곤은 학력을 제한하고, 학력은 직업을 규정하고, 직업은 혼인과 출산을 억압한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경제가 좋아졌다”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 늘 비관적인 전망이 압도했다. 
그런데 수출신기록이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9월까지의 총 수출액이 역대 최고인 4,500억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상위기업들은 표정관리 중이고, 직원들은 성과급 잔치를 기다리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가구당 월 소득이 상위 20%는 974만원이었고, 하위 20%는 131만원으로 7배 이상 차이 났다. 11년 만의 최대 간극이다. 경제위기의 진짜 얼굴은 극심한 양극화다.
지난 21일 서울 성북구청에서 ‘상생하고 소통하는 공동주택 조성을 위한 열린토론회’가 개최됐다. 가장 홀대받는 노동자 ‘경비원’의 고용 안정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관련 기사 6면>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 보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느는 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면 좋겠다.
하위층에선 몇 천원의 최저임금 때문에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가진 자들은 소득주도성장론을 비웃기만 할 뿐,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손톱만큼의 아량도 베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욕심은 무한한데, 그들의 입에선 언제쯤 “모두 함께 잘 살자”는 얘기가 나올까.
역사가 증명하는 극단적 양극화의 끝은 늘 폭동과 공멸이었다.

한국아파트신문사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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